항목 ID | GC0450047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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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蛇山縣 |
이칭/별칭 | 직산현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제도/법령과 제도,지명/고지명 |
지역 | 충청남도 천안시 서북구 직산읍 |
시대 | 고대/삼국 시대/고구려,고대/삼국 시대/신라 |
집필자 | 강종원 |
개정 시기/일시 | 940년 - 직산 사산현을 직산현으로 개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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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할 지역 | 직산 사산현 - 충청남도 천안시 서북구 직산읍 |
[정의]
충청남도 천안시 서북구 직산읍의 삼국 시대 고구려와 신라 당시 행정 지명.
[개설]
지형이 높아 천수답(天水畓)이 많고 가뭄으로 피[稷]가 무성하여 피산이라 칭하던 것이 직산으로 바뀐 것이다.
[관련 기록]
『삼국유사(三國遺事)』에는 직산에 본래 백제의 초도 위례성(慰禮城)이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백제의 시조인 온조가 졸본부여(卒本扶餘)로부터 이곳에서 개국하고 도읍하였다고 한다. 『삼국사기(三國史記)』 지리지에는 사산현(蛇山縣)이 본래 고구려의 현이었는데, 757년(경덕왕 16)에 그대로 사산현이라 하여 백성군(白城郡)[지금의 안성시]의 영현이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변천]
직산 일대가 고구려의 영토로 편제된 시기는 분명하지 않다. 그러나 512년(무령왕 12)에 원산성을 공파하였다는 기록을 참고할 수 있다. 원산성은 온조왕 26년 마한을 병합할 당시 마지막까지 저항한 곳으로 그 위치는 직산 부근으로 비정된다. 그렇다면 직산 일대가 고구려의 영현으로 편제된 것은 고구려 장수왕의 남진으로 한성이 함락되고 475년 웅진으로 천도한 이후로 추정된다. 이후 553년(성왕 31) 신라가 한강 하류 지역을 장악하면서 한강 이남의 고구려 영역은 신라의 지배에 놓이게 되었는데, 이때 직산 지역도 신라의 영유가 되었을 것이다.
사산현은 940년(태조 23)에 직산현으로 고치고, 1018년(현종 9) 천안부(天安府)의 속현이 되었다가 뒤에 감무가 두어졌다. 1393년(태조 2) 이곳 사람 환관(宦官) 김연(金淵)이 명나라에 들어가 사명을 완수하고 사신이 되어 오자, 이 고을을 지군사(知郡事)로 승격하였다.
그 뒤 1401년(태종 1)에 강등시켜 감무를 두었고, 1413년에 현감으로 고쳤다. 1505년(연산군 11) 경기도에 예속시켰다가, 중종 초에 충청도로 환원하였다. 1895년(고종 32) 승격하여 군이 되었다가,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때 천안군으로 병합되었다. 1963년 천원군 지역이 되었다가, 1991년 천원군이 천안군으로 개칭함에 따라 다시 천안군 지역이 되었고, 1995년에는 천안군과 천안시가 통합되어 천안시에 편입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