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5007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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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弘慶寺址 |
분야 |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터 |
지역 | 충청남도 천안시 서북구 성환읍 대홍리 |
시대 | 고려/고려 전기 |
집필자 | 박재용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2009년 - 홍경사지 시굴 조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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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지 | 홍경사지 - 충청남도 천안시 성환읍 대홍리 |
성격 | 절터 |
[정의]
충청남도 천안시 서북구 성환읍 대홍리에 있는 고려 전기의 절터.
[개설]
홍경사는 1021년(고려 현종 12)에 창건하였는데, 수행을 위한 사찰과 여행자의 보호와 편의를 위한 원(院)의 성격을 함께 가졌던 사원이다. 고려 시대에 번성하였던 홍경사는 조선 시대 초기 폐허화된 이후 오랫동안 방치되어 유적이 많이 훼손되고 ‘天安 奉先 弘慶寺 碣記碑[국보 제7호] 등 일부 유물만 전하고 있어 전체 유적의 규모를 거의 알 수 없다. 그러나 주변 논에 많은 기와 조각들이 산재하고 있어 그 규모를 짐작하게 한다.
[위치]
홍경사지는 천안시 서북구 성환읍 대홍리에 있다. 성환읍사무소에서 평택 방향으로 1번 국도를 따라 약 4㎞ 가면 우측 도로변에 위치한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홍경사에 대한 조사는 1996년에 단국 대학교에서 10여 년간의 지표 조사 자료를 모아 『봉선 홍경사지 학술 조사 보고서』를 발간하였고, 2008년 12월과 2009년 1월부터 2월까지 충남 역사 문화 연구원에서 2차에 걸쳐 정밀한 시굴 조사를 실시하였다.
2009년에 충청남도 역사 문화 연구원이 실시한 시굴 조사에서는 적심과 기단 등의 건물지 유적이 확인되었고, 다량의 명문 기와 등이 출토되어 홍경사지의 실체에 접근하는 계기가 되었다.
당시 시굴 조사를 통해 2개 층위의 문화층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하층 문화층 상면에는 와적층이 일부 확인되고 있는데 ‘대중상부 10년 정사(大中祥符十年丁巳)’명 명문 기와와 ‘무오 3월 일 봉선 홍경사 좌도조(戊午三月日奉先弘慶寺左徒造)’명 명문 기와 등이 확인되고 있어 창건기 문화층으로 추정하였다.
상층 문화층은 황갈색 점토 다짐층으로 조성된 기단토가 위치하고 있으며, 기단토 내에서 소량의 기와 조각이 확인되고 있다. 상층 기단토 상면에서도 와적층이 일부 확인되고 있는데 와적층 내에서 분청사기 조각이 일부 확인되고 있어 상층 문화층은 조선 시대 초기까지 활용되었던 것으로 추정하였다.
조사 과정에서 많은 양의 명문 기와가 출토되었다. 가장 특징적인 명문은 ‘대중상부 10년 정사’명 명문 기와와 ‘무오 3월 일 봉선 홍경사 좌도조’명 명문 기와이다. ‘대중상부 10년 정사’명 명문 기와에서 ‘대중상부’는 송대 진종의 재위 기간 중 사용된 연호로 사용 기간은 1009년(고려 목종 12)부터 1016년(고려 현종 7)까지이다. 다만 ‘대중상부’는 1년부터 9년까지 활용되었던 반면에 홍경사에서 확인되는 명문은 ‘대중상부 10년’을 기록하고 있다. ‘대중상부 9년’ 이후에는 ‘천복(天福)’이라는 연호가 사용되기 때문에 ‘정사’명의 간지를 통해 볼 때 ‘천복 1년 정사’로 기재하는 것이 정확할 것이나, 제작 당시의 오기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무오 3월 일 봉선 홍경사 좌도조’명 명문기와는 처음 ‘무’자 명이 타날 과정에서 탈락되어 정확하지 않으나 관찰되는 글자의 특징으로 보아 ‘무오’로 특정하였다. ‘좌도조’라는 명문 중 ‘좌도’는 집단이 어떠한 성격인지는 자료가 미흡하여 밝힐 수 없으나, 기와 제작과 관련된 집단인 것으로 보인다.
두 개의 명문은 각기 연호와 간지명, 사명이 모두 확인되는 중요한 자료로 홍경사의 창건과 관계된 명문임이 확실하다고 할 수 있다.
[현황]
2013년 현재 홍경사지는 천안 봉선 홍경사 갈기비가 서 있는 송림을 중심으로 하여 모두 논으로 개간하여 경작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