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5019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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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寧城誌 |
이칭/별칭 | 영성읍지(寧城邑誌)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지리/인문 지리,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문헌/전적 |
지역 | 충청남도 천안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성봉현 |
[정의]
1852년에 편간된 천안군의 읍지.
[개설]
『영성지(寧城誌)』는 1852년에 편간된 2권 2책의 천안군 읍지이다. 상권은 읍지이고 하권은 『문헌록』이다.
[편찬/간행 경위]
원래 천안에는 선생안(先生案)에 인물의 사적을 함께 수록한 「문헌록(文獻錄)」이 있었다. 「문헌록」은 1577년(선조 10)에 천안 군수로 부임한 손여성(孫汝誠)이 만들기 시작했다. 이를 1627년(인조 5)에 도임한 정지경(鄭之經)이 내용을 보완하여 8첩의 병풍으로 만들어 후대에 귀감이 되도록 하였다. 1698년(숙종 24)에 부임한 이희조(李喜朝)가 「문헌록」을 속성(續成)하고 직접 「영성문헌속발」을 지었다. 1734년(영조 10)에 이윤신(李潤身)이 부임 후에 「문헌록」의 내용을 보충하고 책으로 등사하였다.
그 후 1813년(순조 13)에 부임한 이노겸(李魯謙)이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을 기초로 하여 읍세에 관련된 내용을 정리하고 이를 문헌록과 합하여 처음으로 「영성군지(寧城郡誌)」를 만들었다. 이 군지(郡誌)는 상편이 읍지(邑誌)이고 하편은 문헌록(文獻錄)이었다. 이것을 1852년(철종 3)에 군수로 부임한 한여(韓璵)가 사림의 건의를 받아들여 12명의 유생들과 함께 다시 편찬하여 간행한 것이 현재의 『영성지』이다. 『영성지』는 2003년에 천안 문화원에서 번역하고 원문을 부록하여 간행하였다.
[서지적 상황]
『영성지』의 표제는 寧城誌이다. 한여가 등편하였으며, 목활자(木活字)로 1852년에 간행되었다. 2권 1책에 장정은 5침장안으로 동양장이다. 책의 크기는 33×22cm, 광곽은 사주단변(四周單邊)이고, 반엽광곽(半葉匡郭)의 크기는 23.7×17.7cm, 유계(有界) 11행 24자 주쌍행(注雙行), 어미는 상하내향화문어미(上下內向花紋魚尾)이다.
[구성/내용]
표지 서명은 영성지(寧城志)이며‚ 내용은 상편은 「영성읍지(寧城邑誌)」, 하편은 「영성 문헌(寧城文獻)」으로 구성되었다.
상편은 천안군 지도(天安郡地圖), 천안군지서(天安郡志序)[한여(韓璵)], 구지(舊識)[이로겸(李魯謙)], 영성지설(寧城誌說)[이심순(李心純)], 건치 연혁(建置沿革)‚ 관원(官員)‚ 성씨(姓氏)‚ 형승(形勝)‚ 산천(山川)‚ 풍속(風俗)‚ 토산(土産)‚ 봉수(烽燧)‚ 누정(樓亭)‚ 학교(學校)‚ 역원(驛院)‚ 불우(佛宇)‚ 사묘(祠廟)‚ 고적(古蹟)‚ 공해(公廨)‚ 관관(官館)‚ 창고(倉庫)‚ 제언(堤堰)‚ 교량(橋梁)‚ 방리(坊里)‚ 호구(戶口)‚ 전결(田結)‚ 조적(糶糴)‚ 전세(田稅)‚ 대동(大同)‚ 균세(均稅)‚ 봉름(俸廩)‚ 군총(軍摠)‚ 명환(名宦)‚ 인물(人物)‚ 육현(六賢)‚ 양현(兩賢)‚ 총묘(塚墓)‚ 충신(忠臣)‚ 효자(孝子)‚ 열녀(烈女)‚ 미몽포질(未蒙褒秩)‚ 원거 성씨(原居姓氏)‚ 우거 성씨(寓居姓氏)‚ 누관정기(樓觀亭記)‚ 제영(題詠) 등 41항목으로 구성되어 있다.
하편은 문헌서[이언소(李彦熽)], 문헌도(文獻圖), 문헌록서, 전(傳)[10편], 속전(續傳)[12편], 문헌보서(文獻補敍), 발문[2편: 이동신(李東藎)·이진영(李進永)], 유취음정구허감지촌 이선생 고사론(遊就陰亭舊墟感芝村李先生古事論)[이진영(李進永)]‚ 발문 3편[강기(姜氵+耆)·이복영(李復永)·이경오(李慶五)] 등을 수록하였다.
특기할 사항은 누관정기 조에 이곡(李穀)의 「회고정기(懷古亭記)」, 강호문의 「남원루기(南院樓記)」, 이항복(李恒福)의 「수선정기(水仙亭記)」, 송시열(宋時烈)의 「화축관기(華祝館記)」·「명절정기(明節亭記)」가 수록된 점이다.
[의의와 평가]
『영성지』는 관찬 지리지이었던 『여지도서』가 36개 항목이었던데 비하여 43개 항목으로 편성하는 등 더욱 상세한 천안의 역사와 문화, 실상을 자세히 살필 수 있도록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