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50207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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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三龍洞天安三-長丞祭 |
분야 | 생활·민속/민속,문화유산/무형 유산 |
유형 | 의례/제 |
지역 |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삼룡동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남향 |
[정의]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삼룡동에서 천안 삼거리 공원의 장승을 모신 제사.
[개설]
천안시에서는 1970년대에 삼룡동에 천안 삼거리 공원을 조성하였다. 천안 삼거리는 북쪽으로는 서울, 서쪽으로는 전라도, 남동쪽으로는 경상도와 나뉘는 분기점에 자리 잡아 길손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고 삼거리 부근에는 주막이 즐비하였다. 천안 삼거리는 이러한 지리적인 접근성에 덧붙여 능수버들의 유래, 민요 「흥타령」의 소재 등으로 더욱 유명해졌다.
이러한 문화 요소를 바탕으로, 본래 천안 삼거리가 있는 위치에서 500m 정도 떨어진 곳에 면적 9만 6000㎡의 공원을 조성하였다. 1987년에는 제1회 천안 삼거리 문화제의 일환으로 공원 입구에 목장승 두 기와, 거기에서 10m 정도 떨어진 곳에 시멘트로 만든 대형 석장승 두 기를 세웠다. 장승을 깎아 세우면서 지역 주민들의 안녕을 위해서 장승제를 지냈다.
[연원 및 변천]
천안 삼거리에 본래 장승이 세워져 있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1970년대 공원이 조성되고 1987년부터 천안 삼거리 문화제를 시작하면서 장승을 세우게 된 것으로 보인다.
전통적으로 장승은 마을로 드는 액을 막으려고 마을 입구에 세웠다. 이는 길손들을 위한 이정표 역할도 했다. 천안 삼거리 공원 입구에 장승을 세운 이유도 지역 주민들의 무사태평을 위해서였다.
[신당/신체의 형태]
천안 삼거리 공원 입구에는 두 쌍의 장승이 10여 미터를 사이에 두고 세워져 있다. 두 쌍의 장승은 공원 앞 도로를 바라보고 서 있는 형국이다. 한 쌍은 나무 장승이고, 다른 한 쌍은 대형 시멘트 장승이다.
두 쌍의 장승 모두 흔히 마을 입구에서 보아 왔던 장승보다는 규모가 훨씬 크고 다소 획일화된 느낌을 준다. 먼저 장승의 두 눈은 아래로 쳐져 있는데 눈을 둘러싼 부분을 음각(陰刻)으로 처리하여 자연스럽게 앞으로 튀어나온 듯한 효과를 주고 있다. 코는 한쪽 눈과 거의 비슷한 비율로 둥글게 표현하였다. 입은 크게 벌어져 아래윗니가 들쑥날쑥하게 익살맞게 표현이 되어 있다. 남자 장승에는 수염이 표시되어 있어서 성별을 짐작할 수 있다. 남녀 장승 모두 머리에는 관모를 쓰고 있고 각각의 몸통에는 ‘천하 대장군(天下大將軍)’, ‘지하 여장군(地下女將軍)이라고 쓰여 있다.
한편, 시멘트 장승은 초대형으로 만들어진 조경용 장승으로 보인다. 얼굴에는 페인트를 울긋불긋하게 칠하였다.
[절차]
1987년에 제1회 천안 삼거리 문화제를 개최하면서 천안 삼거리 공원에서 장승제를 지냈다. 당시에 천안시장이 첫 잔을 올리는 초헌관(初獻官)을 하고, 향교 유교 회장이 두 번째 잔을 올리는 아헌관(亞獻官), 문화원장이 마지막 잔을 올리는 종헌관(終獻官)을 맡았다.
장승 앞에 정성껏 준비한 제물을 차리고 유교식으로 장승제를 지냈다. 초헌관이 잔을 올리고 축관이 축문을 읽었다. 축문의 내용은 “우리 천안시 각인각성 집집마다 성황 대신, 천하 대장군, 지하 여장군께 오늘 이 정성을 드렸는데 반가이 흠향 즐거이 운감하셨다 하옵거든 소지 일 장이 맑게 타 백운 등천하소서. 천하 대장군, 지하 여장군이 우리 동중 수구에서 잡귀신 악질을 막아주 신 은혜를 갚을 길이 없어 오늘 이 정성을 드렸사오니 아무쪼록 즐거이 흠향하였다 하옵거든 소지 일 장이 밝게 타 백운에 등천하소서.”라고 되어 있었다.
독축에 이어서 아헌관과 종헌관이 잔을 올렸다. 마지막으로 시민들의 평안함을 비는 뜻에서, 부정을 없애고 소원을 빌려고 흰 종이를 사르는 소지(燒紙)를 올렸다.
[부대 행사]
장승제를 마치고 천안 시립 농악대가 풍물놀이를, 무속인 모임인 경신회(敬神會)의 회원들이 굿판을 벌였다.
[현황]
1987년부터 시작된 천안 삼거리 문화제는 전통의 재창출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그 출발을 기념하여 공원 입구에 장승을 조성하였고 이는 천안 삼거리의 역사와 문화를 기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 천안시는 2003년 천안 삼거리 문화제를 천안 흥타령 춤 축제로 개편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