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80035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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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日帝强占期勞動運動 |
영어공식명칭 | Labor Movement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경상북도 청송군 |
시대 | 근대/일제강점기 |
집필자 | 허종 |
[정의]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청송군에서 전개되었던 노동운동.
[개설]
청송군에서 청송노동공제회가 중심이 되어 야학을 운영하고 봉건 의식 타파를 주제로 한 연극을 공연하는 활동을 벌였다.
[노동운동의 전개]
일제강점기 노동운동은 1910년대에 부두 노동자를 중심으로 간헐적으로 전개되었다. 본격적인 노동운동은 1920년 4월 서울에서 조선노동공제회(朝鮮勞動共濟會)가 결성되면서 시작되었다. 조선노동공제회의 강령은 ‘민족 차별 철폐, 식민지 교육 폐지, 노동자의 기술 양성, 노동 보호와 노동쟁의권 획득, 상호부조’ 등이었다. 활동 방침은 ‘노동자의 지식 계발, 품성 향상, 환난 구제, 직업 소개, 저축 장려, 위생 장려, 노동 상황의 조사와 연구’ 등이었다.
[노동단체의 설립]
청송군에서는 창립 시기를 알 수 없으나, 청송노동공제회가 설립되면서 노동운동의 기운이 싹텄다. 1920년대 초반에 전국 각 지역에서 조선노동공제회 지회가 설립된 사실을 볼 때, 청송노동공제회도 조선노동공제회의 지회 성격을 띠면서 설립된 것으로 보인다.
청송 지역은 농업에 종사하는 인구가 90% 이상인 전형적인 농촌 사회였다. 따라서 양조장·유기 제조 등 영세 사업장에 종사하는 노동자가 일부 존재했을 뿐 공장 노동자가 없어 노동운동이 전개될 수 있는 기반이 취약하였다. 청송노동공제회의 임원도 노동자는 없었고, 신문사 기자와 관공리(官公吏)[관리와 공리를 아울러 이르는 말]들이 주축이었다.
[노동단체의 활동]
청송노동공제회는 청송 지역에 공장 노동자가 형성되어 있지 않아 노동자의 권익 옹호 등 노동자를 위한 활동을 벌이지 못했다. 다만 경제적 어려움으로 배움의 기회를 가지지 못했던 아동과 지역민을 대상으로 야학을 운영하였다. 또한 지역민에게 봉건 의식의 타파와 근대 지식의 전파, 사회의식을 높이기 위해 마을을 순회하며 연극을 공연하였다.
청송노동공제회의 눈에 띄는 활동은 ‘보천교 박멸운동(普天敎撲滅運動)’이었다. 1925년 보천교가 청송 지역에 정교부(正敎部)[보천교의 지방 조직]를 설립하여 지역민에게 선전 강연회를 열자, 청송노동공제회는 청송청년회와 연합하여 강연회를 중단시키고 정교부를 철폐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