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8004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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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後坪里神法山烽燧址 |
이칭/별칭 | 후평리 신법산 봉수터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유산 |
유형 | 유적/유적(일반) |
지역 | 경상북도 청송군 진보면 후평리 산99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최성국 |
현 소재지 | 경상북도 청송군 진보면 후평리 산9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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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봉수|봉수터 |
[정의]
경상북도 청송군 진보면 후평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봉수터.
[개설]
후평리 신법산 봉수지(後坪里神法山烽燧址)는 봉수제가 운용되던 조선시대에 경상도에서 올라오는 제2거[경상도 동래~서울 간]에 해당하는 내지 봉수의 하나였다. 원래 진보면 고현리에 있는 남각산 봉수대[고현리 남각산 봉수지]가 1740년(영조 16)에 이곳으로 이전하였다고 한다.
[건립 경위]
조선시대의 봉수 체계는 기간 봉수인 직봉(直烽)과 보조 봉수인 간봉(間烽)으로 구분된다. 직봉은 봉수의 주노선으로 연대(煙臺)가 여러 개이며, 간봉은 직봉의 보조선으로 연대가 하나이다. 직봉은 서울과 변방 국경 지역을 연결하는 선로로서 8도에 모두 5개의 노선이 있었다. 함경도 경흥~서울 간의 봉수선을 제1거, 경상도 동래~서울 간을 제2거, 평안도 강계~서울 간을 제3거, 평안도 의주~서울 간을 제4거, 전라도 순천~서울 간을 제5거라 하였다. 조선시대 진보현(眞寶縣)에 설치, 운용하였던 후평리 신법산 봉수지는 간봉이었다.
후평리 신법산 봉수지는 『진보현읍지(眞寶縣邑誌)』에 “신법산(神法山) 봉수는 원래 남각산에 있던 봉수를 1740년(영조 16)에 이전하였는데, 현의 서쪽 40리에 위치하며, 동쪽으로 영해 광산 봉수와 응하고 서쪽으로 안동 약산 봉수와 응한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를 통해 신법산 봉수지는 기존의 고현리 남각산 봉수지의 봉수 전달 방법을 유지하면서, 진보현과 더 가까운 신법산으로 옮겨 운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위치]
후평리 신법산 봉수지는 진보면사무소에서 남서쪽으로 약 3.12㎞ 떨어진 후평2리 경로당에서 북서쪽으로 능선 사면을 따라 700m 정도 이동하면, 이 일대에서 가장 높은 약 450m 높이의 산 정상부에 있다.
[형태]
후평리 신법산 봉수지는 봉수대의 터로 보이는 편평하게 정지한 대지만 확인되며, 봉수대의 형태를 알 수 있는 모습은 남아 있지 않다.
[현황]
후평리 신법산 봉수지는 2006년 안동대학교박물관의 『문화유적분포지도』 작성 당시 지표조사를 통해 확인되었다. 봉수대의 규모나 형태를 알 수 있는 구체적인 모습은 남아 있지 않고, 봉수대의 터로 보이는 편평하게 정지한 대지만 확인되며 주변에 기와 조각과 석재가 흩어져 있다.
[의의와 평가]
후평리 신법산 봉수지는 경봉수와 연변 봉수를 연결하는 중간 봉수로 내지 봉수라 할 수 있고, 봉수 노선상 보조 봉수인 간봉에 해당하는 봉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