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30024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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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漆谷都護府 |
영어의미역 | Chilgok Local Administration Institution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제도/법령과 제도 |
지역 | 경상북도 칠곡군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김호동 |
[정의]
조선시대 칠곡 지역에 설치되었던 지방 행정제도.
[제정경위 및 목적]
1593년(선조 26)경에 경상도 감영이 지금의 칠곡인 팔거현에 일시 옮겨온 적이 있었고, 1640년(인조 18)에 가산산성이 축조되면서 칠곡도호부로 승격되었다. 경상도의 중심으로서 교통의 요충지일 뿐만이 아니라 감영인 대구를 방비할 수 있는 천연적 요새이기 때문에 도호부가 될 수 있었다. 1643년에 경상감사 임담(林墰)이 “칠곡부(漆谷府)를 성 안에다 설치한 것은 만전을 도모하자는 계책에서 나온 것”이라고 하였다.
[관련기록]
허목이 지은 『기언(記言)』「가산 축성석기(架山築城石記)」에서는 “상(인조) 17년(1639)에, 이공 명웅(李公命雄)이 부제학에서 영남관찰사(嶺南觀察使)로 나갔다. ···공이 부임하여 지리 조건을 자세히 살펴본바, 큰 산이 잘 둘러 막혀서 남쪽 지방을 방어하는 데는 가산 보다 더 좋은 곳이 없었다. 이 산은 성주(星州) 동쪽 팔거(八莒)의 진산(鎭山)으로서 영해(嶺海)의 요충지이다. 큼직큼직한 읍군(邑郡)들이 바둑판처럼 사방으로 벌여 있어서 물산이 잘 모여들고, 큰 강을 끼고 있어서 뱃길이 사방으로 통한다. 이에 지리의 편리함을 조정에 알리고 이해 9월에 많은 남정(男丁)을 징발하여 험한 지형을 따라 성을 쌓아 이듬해 4월에 이르러 준공하니, 징발된 인원이 무려 십여만 명이었다. 성의 둘레가 3830보(步)에, 1752개의 성가퀴가 있으며, 성에 딸린 문루(門樓)·보루(堡樓)·군영(軍營)·각종 대(臺)·수문(水門) 및 기타 크고 작은 공해(公廨)·사원(寺院) 등이 총 30여 곳이고, 크고 작은 샘과 연못이 32곳이며, 무기도 그만큼 갖추었다. 백성을 모아 일체의 부역과 세금을 면제해 주고 성안에 살도록 한 다음, 토지를 분할하고 경계를 다시 그어 칠곡도호부(漆谷都護府)를 설치하였다. 얼마 뒤에 이를 반대하던 자들이 다방면으로 헐뜯고 이공은 이곳을 떠났다. 이로부터 산성에 관한 일만 말하면 세상에서 거리낌을 받게 되었으며 얼마 못 되어 이공도 죽었다. 관찰사가 두 사람이나 거쳐 갔지만 모두 돌보려는 자가 없었으며, 때문에 이공을 헐뜯어 비난하고 성이 불필요하다고 다투어 말하는 자가 더욱 많아졌다. 현재 사상(使相) 임공담(林公墰)이 명을 받고 영남에 부임하여 그 길로 해변을 순시하고, 연이어 각 군의 지리 조건을 관찰하다가 이곳에 와서 영루(營壘)를 두루 살펴보고는 탄식하기를 ‘관방(關防)이 이곳보다 더 장대한 곳이 없다.’ 하고 장계를 올려 이공의 방략(方略)이 매우 훌륭하였음을 극력 설명하고, 성을 쌓은 여러 장사(將士)들에게 모두 벼슬과 상을 추증할 것을 청하였다. 그리고 또 땅이 좁아서 옮겨 온 백성들의 농지가 모자라므로 다른 곳의 땅을 떼어다 보태 줄 것을 청하여 동으로 공산(公山)을 기점으로 해서 서로 낙동강까지 다 떼어 주었다. 도호부사(都護府使) 최후 후헌(崔侯後憲)이 도호부를 설치한 전말의 사실을 갖추어 기록하여 나에게 기(記)를 부탁하였는데, 이를 산돌에 새긴다.”라고 되어 있다.
[변천]
칠곡도호부는 1895년 지방제도 개편으로 인해 대구부 칠곡군, 1896년에 경상북도 칠곡군이 되었다. 1914년 군·면 폐합에 의해 인동군이 폐지되고 인동군 북삼면은 그대로, 읍내면·북면이 인동면으로, 문량면·장곡면·석적면[일부]이 석적면으로, 기산면·약목면이 약목면으로 통합되고, 동면이 가산면의 일부로 편입됨으로서 면적이 크게 넓어졌다. 당시 칠곡군은 노곡면·파미면이 왜관면으로, 칠곡군 동북면, 석적면[일부]이 가산면으로, 퇴천면·팔거면·문주면이 칠곡면으로, 하북면·서북면이 동명면으로, 이언면·상지면·도촌면이 지천면으로 통합되었다. 1949년에 왜관면, 1980년에 칠곡면이 읍으로 승격되고, 1986년에 약목면 동부출장소가 기산면으로 승격되었다. 1978년에 칠곡군 인동면과 선산군 구미읍이 통합 구미시로 승격되어 칠곡군과 선산군에서 분리·독립되고, 1981년에 칠곡읍이 대구광역시로 편입됨으로써 영역이 대폭 축소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