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30028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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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福星里碑石群 |
영어의미역 | Monuments in Bokseong-ri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역사/근현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비 |
지역 | 경상북도 칠곡군 약목면 남계리 603-1 |
시대 | 조선/조선,근대/근대 |
집필자 | 장희흥 |
성격 | 선정비|불망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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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식 | 호패형|지붕돌형 |
건립시기/일시 | 전주사이일우청의기념비 미상|전주사이일우청덕불망비 을축년|전직각황제공장길상송덕비 1931년 6월|부사오후진영영세불망비 미상|김천찰방이계사불망비 무인(戊寅) 5월|전승지정규악위의기념비 임술 정월|부사이후진회애민선정비 1814년 갑술|부사정후계동선정애민비 미상|부사강후선청덕인정화민영세불망비 1687년 6월|부사이후익해선정애민비 1717년 4월|부사이후의태애민선정비 1748년 3월 |
관련인물 | 이일우|장길상|오진영|이계사|정규악|이진회|정계동|강선|이익해|이의태 |
재질 | 화강암 |
높이 | 전주사이일우청의기념비 113.5㎝|전주사이일우청덕불망비 119㎝|전직각황제공장길상송덕비 비신 123㎝, 지붕돌 36㎝|부사오후진영영세불망비 160㎝|김천찰방이계사불망비 154㎝|전승지정규악위의기념비 120㎝|부사이후진회애민선정비 160㎝|부사정후계동선정애민비 198㎝|부사강후선청덕인정화민영세불망비 287㎝|부사이후익해선정애민비 220㎝|부사이후의태애민선정비 171㎝ |
너비 | 전주사이일우청의기념비 40.5×12.5㎝|전주사이일우청덕불망비 42.4×14㎝|전직각황제공장길상송덕비 비신 44×16㎝, 지붕돌 71×46㎝|부사오후진영영세불망비 54×17㎝|김천찰방이계사불망비 가로 상부 49㎝, 하부 34㎝×세로 14㎝|전승지정규악위의기념비 40×14.5㎝|부사이후진회애민선정비 가로 56㎝|부사정후계동선정애민비 62×19㎝|부사강후선청덕인정화민영세불망비 70×52.5㎝|부사이후익해애민선정비: 108×17㎝|부사이후의태애민선정비 73.5×32㎝ |
소재지 주소 | 경상북도 칠곡군 약목면 남계리 603-1[약목 평생학습복지센터] |
[정의]
경상북도 칠곡군 약목면 남계리에 있는 조선시대부터 일제강점기 때 세워진 선정비와 불망비.
[건립경위]
앞쪽 왼쪽 첫 번째부터 전주사이일우청의기념비(前主事李一雨淸議記念碑)와 전주사이일우청덕불망비(前主事李一雨淸德不忘碑)는 주사를 지낸 이일우를 기리기 위해 세운 것으로 후자는 을축년에 건립하였다. 전직각황제공장길상송덕비(前直閣黃濟公張吉相頌德碑)는 건립 경위 미상으로, 장길상(張吉相)[1874~1936]은 조선시대의 문신이며 일제강점기의 사업가로, 자는 치상(致祥), 호는 황재(黃齋), 관찰사를 지낸 장승원의 아들이다. 장직상, 장택상의 형이다. 규장각 직각을 역임하였다. 그를 기리기 위해 1931년 6월 약목면이 건립하였다.
부사오후진영영세불망비(府使吳侯晋泳永世不忘碑)는 서울 출신으로 철종 대에 도정을 지낸 오진영의 선정을 기리기 위한 것이다. 김천찰방이계사불망비(金泉察訪李稽思不忘碑)는 건립 경위 미상으로 무인(戊寅) 5월에 세웠다. 전승지정규악연의기념비(前承旨鄭圭握捐義紀念碑)도 임술(壬戌) 정월에 세웠다.
뒤쪽의 부사이후진회애민선정비(府使李侯晋會愛民善政碑)는 순조 대에 도정(都政)을 지낸 이진회의 선정을 기리기 위한 것으로, 1814년(가경 19) 갑술(甲戌)에 세웠다. 부사정후계동선정애민비(府使鄭侯癸東善政愛民碑)는 건립 경위 미상이며, 부사강후선청덕인정화민영세불망비(府使姜侯銑淸德仁政化民永世不忘碑)는 서울 태생으로 숙종 대에 도정을 지낸 강선의 선정을 기리기 위한 것으로 1687년(정묘) 6월에 세웠다.
부사이후익해애민선정비(府使李侯翼海愛民善政碑)는 청주 태생으로 숙종 대에 도정을 지낸 이익해의 선정을 기리기 위한 것으로, 1717년(정유) 4월에 세웠다. 부사이후의태애민선정비(府使李侯宜泰愛民善政碑)는 서울 태생으로 영조 대에 도정을 지낸 이의태의 선정을 기리기 위한 것으로 1748년(무진) 3월에 세웠다.
[위치]
칠곡군 약목면사무소[약목면 복성리 1004번지] 좌측편에 11기의 비석이 있다. 부사강후선청덕인정화민영세불망비(府使姜侯銑淸德仁政化民永世不忘碑)는 약목면 약목로 98[복성리 847-12번지] 도로가에 있던 것을 도로 정비 시에 면사무소 내로 이동하였다. 이후 약목면사무소 신축 공사로 인해 남계리에 있는 약목 평생학습복지센터 앞으로 다시 이동하였다.
[형태]
앞쪽 왼쪽 첫 번째부터 전주사이일우청의기념비(前主事李一雨淸議記念碑)는 자연석 받침돌에 각진 호패형, 전주사이일우청덕불망비(前主事李一雨淸德不忘碑)는 자연석 받침돌에 사각 호패형이다. 전직각황제공장길상송덕비(前直閣黃濟公張吉相頌德碑)는 사각형의 받침돌에 오석으로 만든 비신, 팔작 지붕 형태의 지붕돌[옥개석]로 되어 있다. ‘소화(昭和)’라는 연도는 훼손되어 있다.
부사오후진영영세불망비(府使吳侯晋泳永世不忘碑)는 자연석 받침돌에 화강암으로 만든 각진 호패형이다. 김천찰방이계사불망비(金泉察訪李稽思不忘碑)는 자연석 받침돌에 비신 역시 장방형 자연석을 자연스럽게 세웠다. 전승지정규악연의기념비(前承旨鄭圭握捐義紀念碑)는 사각 받침돌에 각진 호패형의 비신으로 구성되어 있다.
뒤쪽의 부사이후진회애민선정비(府使李侯晋會愛民善政碑)는 자연석 받침돌에 화강암으로 만든 비신, 꽃문양과 일월(日月)을 새긴 이수형으로 되어 있다. 부사정후계동선정애민비(府使鄭侯癸東善政愛民碑)는 화강암 자연석 받침돌에 자연석의 사각 장방형 기둥 모양의 비신으로 되어 있다.
부사강후선청덕인정화민영세불망비(府使姜侯銑淸德仁政化民永世不忘碑)는 화강암으로 만든 자연석을 받침돌로 했다. 비신 역시 자연석을 기둥 모양으로 만든 비석이다. 부사이후익해애민선정비(府使李侯翼海愛民善政碑)는 화강암의 자연석 받침돌에 전면만 평평하게 만든 자연석으로 만든 장방형 기둥 모양의 비신으로 되어 있다. 부사이후의태애민선정비(府使李侯宜泰愛民善政碑)는 자연석을 받침돌로 했다. 비신 역시 자연석을 장방형의 기둥 모양으로 전면만 다듬어 글씨를 조각했다. 뒷면에는 깨어진 것을 붙여 놓기 위해 시멘트로 중간 부분을 이어 놓았다.
각 비석의 높이는 전주사이일우청의기념비 113.5㎝, 전주사이일우청덕불망비 119㎝, 전직각황제공장길상송덕비는 비신 높이 123㎝, 지붕돌 36㎝이며 부사오후진영영세불망비 160㎝, 김천찰방이계사불망비 154㎝, 전승지정규악위의기념비 120㎝, 부사이후진회애민선정비 160㎝, 부사정후계동선정애민비 198㎝, 부사강후선청덕인정화민영세불망비 287㎝, 부사이후익해애민선정비 220㎝, 부사이후의태애민선정비 171㎝이다.
각 비석의 너비는 전주사이일우청의기념비 40.5×12.5㎝, 전주사이일우청덕불망비 42.4×14㎝, 전직각황제공장길상송덕비 비신 44×16㎝, 지붕돌 71×46㎝, 부사오후진영영세불망비 54×17㎝, 김천찰방이계사불망비 상부 49㎝, 하부 34㎝×14㎝, 전승지정규악위의기념비 40×14.5㎝, 부사이후진회애민선정비 56㎝, 부사정후계동선정애민비 62×19㎝, 부사강후선청덕인정화민영세불망비 70×52.5㎝, 부사이후익해선정애민비 108×17㎝, 부사이후의태애민선정비 73.5×32㎝이다.
[의의와 평가]
조선시대에서 일제시대의 칠곡 지역 사정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