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300413
한자 申劉將軍遺蹟
영어의미역 Ruins of General Sinyu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경상북도 칠곡군 약목면 신유로 172[남계리 산 21-1]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최인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문화재 지정 일시 1982년 8월 4일연표보기 - 신유장군 유적 경상북도 기념물 제38호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신유장군 유적 경상북도 기념물 재지정
성격 위인 유적(偉人 遺蹟)
건립시기/연도 조선 후기
관련인물 신유 장군
면적 22,907㎡
소재지 주소 경상북도 칠곡군 약목면 신유로 172[남계리 산 21-1]지도보기
문화재 지정번호 경상북도 기념물

[정의]

경상북도 칠곡군 약목면 남계리에 있는 신유 장군을 기리는 유적지.

[개설]

1982년 8월에 경상북도 기념물 제38호로 지정된 곳으로 조선 효종 때 무신인 신유[1619~1680]장군을 모신 사당이다. 신유 장군은 약목면 복성리 출신으로 1658년(효종 9) 청국의 원병 요청으로 당시 함경북도의 병마우후로서 제2차 나선정벌의 영장으로 북병영의 정예 포수 2백여 명을 주축으로, 총병력 265명을 이끌고 만주의 헤이룽강까지 출병하여 우수한 전투 능력을 발휘하여 남하하는 러시아의 스테파노프 부대를 격파함으로써 빛나는 전공을 세웠다.

[건립경위]

1680년(숙종 6)에 장군이 62세로 생을 마감하자 왕이 제문을 내리고 예관을 보내 제사하게 하였다. 그 후 약목면 남계리 숭무사에 제향하고 경내에 신도비를 세웠는데 판서 이현일이 비문을 짓고, 글씨는 교리 이동적이 전액하고 이재익이 음기를 썼으나 6·25전쟁 때 포격으로 파손되었다. 그 후 고쳐 세운 비석의 글씨는 이상건이 썼다. 묘소는 숭무사 뒷산인 봉명산 중턱에 있으며 매년 음력 정월 15일에 향사(享祀)하고, 3월에는 후손들이 추모제를 올리고 있다. 장군의 유물로는 교지 35장, 논서 6장, 교서 1장, 사제문 1장, 부인교지 1장, 분재기 1통, 간찰 1통이 있다. 사당과 경역은 1979~1981년에 보수·정화하였다.

[위치]

경상북도 칠곡군 약목면 신유로 172[남계리 산 21-1번지]에 있는데, 약목면 소재지에서 두만지로 가다보면 두만지 200~300m 못 미쳐 길 오른쪽에 있다.

[형태]

신유 장군의 사당을 중심으로 신도비각, 내·외삼문 등으로 이루어진 유적지이다. 외삼문인 북정문(北征門)을 지나 경내로 들어가면 신도비각과 존성재 건물이 나오고 내삼문인 선위문(宣威門)을 지나면 신유 장군의 영정과 위패가 봉안된 사당인 숭무사(崇武祠)가 있다.

[현황]

1982년 8월 4일 경상북도 기념물 제38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경상북도 기념물로 재지정된 유적지로 보존과 관리가 매우 좋다.

[의의와 평가]

신유장군 유적은 1685년(효종 9)에 2차 나선정벌군을 이끌고 흑룡강 부근에서 러시아군을 물리친 공적을 기리는 유적이다. 복잡한 국제질서 속에서 국가의 이익을 위하여 활동했던 신유 장군의 행적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를 제공해 준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

이용자 의견
박** 어러위요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2011.05.23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