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3005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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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鐵均 |
영어음역 | Yi Cheolgyun |
이칭/별칭 | 사형(士衡),월오(月塢)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 월오리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박헌규 |
성격 | 문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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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 왜관리[월오] |
성별 | 남 |
생년 | 1450년 |
몰년 | 1541년 |
본관 | 벽진 |
대표관직 | 대사성(大司成) |
[정의]
조선 중기 칠곡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벽진(碧珍). 자는 사형(士衡), 호는 월오(月塢). 신라 헌안왕(憲安王) 때 벽진태수로 용맹을 떨쳤던 이총언(李悤言)을 시조로 하는 벽진이씨이다. 판서 이건지(李建之)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이말정(李末丁)이며 어머니는 의성김씨, 부인은 성산여씨이다.
[활동사항]
1450년(세종 32)에 태어나서 1465년(세조 11)에 진사시에 합격하였으며, 1496년(연산군 2)에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이 대사성(大司成)에 이르렀다. 한훤당 김굉필과 더불어 점필재(佔畢齋) 김종직(金宗直) 문하(門下)에서 배워 학문과 행실이 으뜸이었다. 1498년(연산군 4) 무오사화(戊午士禍)가 일어나 많은 선비들이 화를 입게 되자 벼슬을 버리고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 왜관리 월오로 귀향하여 여생을 보냈다. 관직 생활 중에는 청백리로 선정되었으며 별세 후에는 중종(中宗)이 관곽(棺槨)을 하사하였다. 대대로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 왜관리 월오(月塢)에 살았다.
[묘소]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 낙산리 지리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