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3006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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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昌鎭 |
영어음역 | Yi Changjin |
이칭/별칭 | 운장(雲長),창주(滄洲)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 석전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박헌규 |
[정의]
조선 중기 칠곡 출신의 유생.
[가계]
본관은 벽진(碧珍). 자는 운장(雲長), 호는 창주(滄洲). 벽진장군(碧珍將軍) 이총언(李悤言)을 시조로 하고, 진사(進士) 이인손(李麟孫)을 칠곡 입향조로 하는 벽진이씨로, 완석정(浣石亭) 이언영(李彦英)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안동권씨, 부인은 해평윤씨이다.
[활동사항]
1619년(광해군 11)에 태어나 어려서부터 주자(朱子)의 글을 독실하게 믿어 세상에 이름이 알려졌으나 현달해지는 것을 구하지 아니하였다. 여헌(旅軒) 장현광을 배알하고 학문의 요결을 얻어 들었으며, 20세부터 학식을 갖추었다. 1679년(숙종 5)에 김천도(金泉道) 찰방(察訪) 또한 이후에 황산도(黃山道) 찰방으로 부름을 받았으나 모두 나아가지 않았다. 바야흐로 시세가 변환하는 즈음에 기틀을 밝게 보고 은거하여 덕(德)을 완전히 하고 이름을 온전히 하여 한 시대 유림(儒林)의 중망(重望)을 받았다. 시문을 모아 엮은 책이 있다고 전하며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 석전리에 살았다.
[묘소]
경상북도 김천시 대항면 대성리 공자동 선영에 있다.
[상훈과 추모]
장령(掌令) 정종로(鄭宗魯)가 비갈을 지었고 손자 이주천(李柱天)이 행장을 지었으며, 경상북도 칠곡군 지천면 심천리에 추모지소인 오도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