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3006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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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蔡鍾植 |
영어음역 | Chae Jongsik |
이칭/별칭 | 자회(子悔),일재(一齋)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경상북도 칠곡군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박헌규 |
[정의]
조선시대 칠곡 출신의 유생.
[가계]
본관은 인천(仁川). 자는 자회(子悔), 호는 일재(一齋). 고려 말에 호조전서(戶曹典書)를 지내다가 조선이 개국되자 절개를 지켜 두문동(杜門洞)으로 들어가 은거한 채귀하(蔡貴河)를 중조(中祖)로 하고 본관을 인천으로 하여 세계(世系)를 이어오고 있는 칠곡의 입향조 거경(巨敬) 채영우(蔡瀛佑)의 후손이다. 죽와(竹窩) 채국열(蔡國烈)의 손자이다.
[활동사항]
사미헌(四未軒) 장복추(張福樞)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천성적인 자질이 뛰어나게 총명하여 문학으로 일찍이 나아가 예의를 갖추어 근신하였으며 긍지를 가졌다. 의지가 강하여 사물에 동하지 않는 모양이 있어서 범접할 수 있는 기상이 아니었다. 혹 『근사록(近思錄)』을 묻고 주역을 물어 분변함에 경전의 뜻과 맞았다. 『국역 칠곡지리지』에 관련 내용이 전한다.
[저술 및 작품]
『형설도설(形性圖說)』, 『율려도수(律呂圖數)』 등의 책과 유고(遺稿)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