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30066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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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萬膺 |
영어음역 | Yi Maneung |
이칭/별칭 | 규응(奎應),만산(晩山) |
분야 | 종교/유교,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효자·열녀 |
지역 | 경상북도 칠곡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장영복 |
[정의]
조선 후기 칠곡 지역 출신의 효자.
[가계]
본관은 벽진(碧珍). 자는 규응(奎應), 호는 만산(晩山). 벽진장군 이총언(李悤言)을 시조로 하고 칠곡 약목으로 옮겨 살던 첫째 집은 17세 절충장군(折衝将軍) 이말정(李末丁)[1422~1474] 대에 칠곡군(漆谷郡) 월오[현 왜관읍 왜관리]로 이거하였으며, 장자인 대사성 이철균(李鉄均)의 호(號)를 따서 동네 이름을 월오(月烏)라 하였다. 또한 선산으로 이주한 둘째 집은 18세 예원(禮源) 대에 칠곡군 동명(東明)으로 입향하여 후손들이 세거하고 있으며, 칠곡군 약목에 살던 셋째 집은 18세 진사(進士) 이인손(李麟孫) 대에 왜관읍 석전에 입향하여 터를 잡고 여러 대를 살았다. 이리하여 칠곡군 일원에는 왜관읍 석전, 달오[월오, 현 왜관읍 왜관리], 지천면 웃갓[지천면 신리], 동명 등지에 집성 세거하는 벽진이씨로 완정(浣亭) 이언영(李彦英)의 후손이며 이영모(李英模)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고령신씨, 부인은 옥산장씨이다.
[활동사항]
일찍이 사미헌(四未軒) 장복추(張福樞)의 문인으로 효성이 지극하고 문장과 행실로 세상에 명성이 자자하였고 사우(士友)들의 추중을 받았다. 아버지 병환 10년 동안 구완하면서 허벅다리를 살을 베어 부모의 병환에 약시중 드는 일을 했으며 짐승도 감동하여 호랑이가 토끼와 꿩을 물어다 주었다고 한다. 상서로운 감응은 고을과 도(道)의 유장(儒狀)에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저술 및 작품]
사미헌(四未軒) 장복추(張福樞)가 지은 『효자전(孝子傳)』이 있다.
[묘소]
경상북도 김천시 대항면 대성리 공자동 안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