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30099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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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星州都氏 |
영어의미역 | Seongju Do Clan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경상북도 칠곡군 석적읍 장곡리|지천면 달서리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박헌규 |
세거지 | 경상북도 칠곡군 석적읍[장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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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성촌 | 경상북도 칠곡군 석적읍 남율리[밤실] |
입향시기/연도 | 조선 중기/1601년 경 |
성씨시조 | 도계(都稽) |
입향시조 | 도덕택(都德澤) |
[정의]
도계를 시조로 하고 도덕택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칠곡군의 세거 성씨.
[연원]
도씨는 중국의 여양[현재 직예성 대명도] 출신의 도계(都稽)가 한무제 때에 북파장군으로 여가의 반란을 평정하여 도씨 성을 받은 것에서 유래한다. 우리나라의 도씨는 도계(都稽)의 후손인 도조가 중국 성제 제위 기간에 고구려에 건너와서 동명왕의 첫째 아들 유리가 이복동생인 온조와 왕권 경쟁을 벌일 때 유리를 도와서 유리가 왕위에 오르는 데 큰 공을 세웠다. 이후 우리나라에 살게 되면서 도씨의 문호가 열리게 되었다. 그러나 『전고대방(典故大方)』과 또 다른 문헌에서는 백제(百濟) 개루왕 때 정승 도미를 도씨의 시조로 기록하고 있는데 『삼국유사』와 『삼국사기』에 도미의 기록이 전한다.
일찍이 성주 고을에서 학문과 도덕의 가문으로 알려져 온 도씨는 고려 창업에 큰 공을 세웠던 도진(都陳)이 정승의 벼슬에 올라 성산부원군에 봉해지고 식읍으로 하사받은 성주에 세거하면서 후손들이 성주를 본관으로 삼게 되었다. 성주 도씨의 족보에 보면 고려 원종 때 전라상서를 지낸 도순(都順)을 1세조로 하고 전서공파, 판서공파 중낭자공파, 시승공파, 봉차령공파 등의 7개 파로 나누어져 세계(世系)를 계승하고 있다.
[입향 경위]
도순(都順)의 16세손 여남(旅南) 도덕택(都德澤)은 선교량(宣敎郞) 밀양교수(密陽敎授) 도응룡(都應龍)의 아들로 1601년(선조 34)에 출생하였다. 37세에 생원시에 합격하여 성균관 진사가 되었다. 홍주(洪州)에서 인동(仁同) 장곡(長谷)으로 이거(移居)하여 칠곡군의 입향 시조가 되었다. 1667년(현종 8)에 사망하였다. 묘소(墓所)는 장곡에 있고 묘하에 여남재(旅南齋)가 있다.
[현황]
인구 주택 총조사 「성씨 및 본관 보고서」에 의하면 2000년 110여 가구 350여 명이 칠곡군 관내에 살고 있다. 경산부의 속현인 팔거[칠곡]에 세거지를 정하여 토성(土姓)으로 살아오고 있으나 지금은 칠곡·대구·고령·경산·군위 등지로 흩어져 살고 있다. 지천면 달서리[원골]와 석적면 남율리에는 10여 가구가 집성촌을 이루어 향리(鄕里)를 보존하고 있다.
[관련유적]
경상북도 칠곡군 석적읍에 입향조인 여남(旅南) 도덕택(都德澤)을 위하여 세운 여남재(旅南齋), 경상북도 칠곡군 지천면에 도윤안(都允安)과 그의 선조들을 수성(修成)하기 위해 세운 수성재(修成齋)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