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301941 |
---|---|
한자 | 李采淵 |
영어음역 | Yi Chaeyeon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북도 칠곡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박헌규 |
성격 | 문신 |
---|---|
출신지 |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 봉계리[이암(耳巖)] |
성별 | 남 |
생년 | 1861년 |
몰년 | 1900년 |
본관 | 광주 |
대표관직 | 한성판윤 |
[정의]
조선 말기 칠곡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광주(廣州). 이당(李唐)의 차자 이집(李集)을 일대(一代)로 하고 좌통례공 이극견의 차자 승사랑 이지(李摯)를 칠곡 입향조로 하는 광주이씨의 후손이다. 아버지는 증내부대신(贈內部大臣) 이이봉(李以鳳)이며, 어머니는 김녕김씨, 부인은 인동장씨·성주배씨이다.
[활동사항]
1861년(철종 12) 칠곡군 왜관읍 봉계리에서 태어났다. 1886년(고종 23) 진사시에 입격하여 제중원주사(濟衆院主事), 미국공사서의 번역관, 주차(駐箚)미국서기관, 선공감별제(繕工監別提), 단성(丹城)현감, 전우국방판(電郵局幇判)을 역임하고, 1894년(고종 31) 식년문과 갑과에 급제 공조참의(工曹參議), 동부승지, 하동부사, 첨지중추원사, 경기도관찰사, 궁내부특진관, 아문부총재, 시종원경, 귀족원경을 거쳐 김홍집 내각의 농상 2부 협판(協辨)으로 개화정책의 수행에 참가했다.
궁내부대신 등 여러 벼슬을 거쳐 한성판윤(현재의 서울 시장)을 아홉 번이나 역임하면서 서울의 도시계획을 처음으로 입안했다. 1896년 한성판윤으로 독립협회 창립에 참가했으나 독립협회가 정부 시책을 규탄하자 탈퇴했다.
[묘지]
경기도 양주군 백석읍 복지리 호명산(虎鳴山)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