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9011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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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石鑑 |
영어음역 | Seok Gam |
이칭/별칭 | 명서(明序)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충청북도 충주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이성호 |
[정의]
조선 중기 충청북도 충주에서 읍리(邑吏)를 역임한 인물.
[가계]
본관은 충주(忠州). 증조할아버지는 도사(都事)를 지낸 석광필(石光弼)이며, 아들 석지강(石至剛)은 사마시에 합격했다.
[활동사항]
임진왜란 때 석감의 조카 석천수(石天壽)가 피난하여 왔는데, 어느 날 보리를 벤 후 밤에 교동(校洞)에 들어가니 왜적의 방화로 마을이 불타고 있었다. 석감은 조카인 석천수와 함께 화염을 무릅쓰고 향교에 뛰어들어 5성의 위패를 모시고 심항산(心項山)의 옛 절에 모셨다가 난이 평정된 뒤에 다시 대성전(大成殿)을 세워 봉안했다. 예조 및 병조의 수교(受敎)를 수록한 『호성공사실(護聖公事實)』의 「호성사고유문(護聖祠告由文)」에는 임진왜란 때 석감과 석천수가 오성(五聖)의 위패를 받들고 피난하여 호성공신(扈聖功臣)이 된 사실을 담고 있다.
[상훈과 추모]
숙종 때에 사림들이 석감의 존성(尊聖)의 뜻을 알리어, 석감은 병조참판에 증직되었다. 지방의 유림에서는 향교 앞에 호성사(護聖祠)를 세워 두 사람의 위패를 모시고 매년 석전제(釋奠祭)와 동시에 제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