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90315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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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水安堡石戰 |
영어의미역 | Mock Fight With Stone Missiles in Suanbo |
분야 | 생활·민속/민속,문화유산/무형 유산 |
유형 | 놀이/놀이 |
지역 | 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온천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어경선 |
[정의]
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온천리에서 정월 대보름날 전후에 행해지던 돌싸움 놀이.
[개설]
온천리는 문경새재 아래에 있는 마을로 영남 지방과 호서 지방을 가르는 곳에 있어 외적의 침략이 있을 때마다 영향을 받는 지역이었다. 또 온천이 발달하면서 외지인의 출입이 잦아 마을 사람들의 단결력이 다른 지역보다 필요한 곳이었다. 이에 마을에서는 음력 정월 대보름날이 되면 마을 청소년들의 단결력을 기르고 유사시에 대비할 수 있는 전쟁놀이인 돌싸움(석전, 척석희) 놀이를 해마다 열었다. 1960년대 이후로 시행되지 않는다.
[연원]
돌은 원래 군(軍)에서 사용된 무기로서 화살과 아울러 중요한 병기의 하나였다. 석기시대에는 창, 칼 등을 모두 석재에서 취한 것으로 미루어 돌도 병기로 활용하였을 것이다. 이와같이 돌싸움은 고대의 전법에서 유래한 것으로 삼국시대에 이미 군사 수련의 하나로 세시 향사에 등장했을 것으로 여겨진다. 돌싸움은 조선시대는 물론 1970년대까지도 세시풍속으로 남아 있었다고 한다.
조선 초기부터 군사 훈련의 하나로 돌싸움을 시행하였는데 사상자가 많이 발생하여 조정에서는 수시로 금지시켰으나 실제 전쟁터에서는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1397년(태조 6) 석전 부대인 척석군이 왜구를 막는 데 동원되었으며, 임진왜란 때 행주대첩이나 중종 연간에 왜를 정벌할 때도 척석군이 동원되었다.
[놀이도구 및 장소]
주먹만한 돌과 줄팡게·망팡게 등의 도구를 이용하였으며, 온천리 관동(일명 귀골)에서 흘러내리는 도랑과 안보리 머리골에서 흘러내리는 도랑이 합쳐지는 주변에서 돌싸움을 하였다.
[놀이방법]
정월 대보름 즈음이 되면 마을 청소년들은 망월돌리기, 연날리기, 얼음지치기, 쥐불놀이 등의 놀이를 하며 논다. 그러다가 보름날 오후가 되면 도랑 주변으로 모여들기 시작한다. 양편으로 나누어 놀이를 하였는데 도랑 동쪽은 머리골·관동·도장골·다리골·동진이·양짓말 아이들이 한 편이 되고, 도랑 서쪽은 물탕거리·탑동·새터 아이들이 한 편이 되었다.
먼저 주변에 있는 주먹만한 돌을 모아 돌무더기를 만든 다음 서로 약을 올리다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돌을 던지기 시작한다. 싸움은 열 살 남짓한 아이들부터 시작하지만 차츰 연령이 높아져서 마침내 서른 살 미만의 청년들이 싸움을 주도하게 된다. 이때쯤이면 마을의 노인들이 작전 지시를 내리기도 한다.
싸움이 격해지면 줄팡게로 돌을 날려 보내기도 하는데 정확하고 빨라서 맞으면 치명상을 입는다. 또 망월돌리기 통에 돌을 넣어 던지기도 한다. 날이 저물면 돌싸움은 끝이 나는데, 이때에 부상을 당하는 경우가 있더라도 책임을 물리거나 시비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