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충후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80864
한자 朴忠後
영어공식명칭 Park Chunghu
이칭/별칭 경술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대구광역시 달성군 하빈면 묘리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이광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552년연표보기 - 박충후 출생
활동 시기/일시 1592년 - 박충후 임진왜란 창의
활동 시기/일시 1593년 - 박충후 통정대부로 승급
활동 시기/일시 1593년 - 박충후 가선대부로 승급
활동 시기/일시 1594년 - 박충후 무과 급제
활동 시기/일시 1605년 - 박충후 함안 군수 부임
몰년 시기/일시 1611년연표보기 - 박충후 사망
거주|이주지 박충후 거주지 - 대구광역시 달성군 하빈면 묘리
묘소 지족당 - 경상북도 성주군 선남면 오도리
성격 의병
성별
대표 경력 오위도총부 부총관

[정의]

조선 후기 경상도 대구 도호부 출신의 의병.

[가계]

본관은 순천(順天). 자는 경술(景述). 고조할아버지는 사육신(死六臣) 중 한 명인 충정공(忠正公) 박팽년(朴彭年)이며, 증조할아버지는 진사(進士) 박순(朴珣), 증조할머니는 군수(郡守)를 지낸 이철근(李鐵根)의 딸 성주 이씨(星州李氏)이다. 할아버지는 증(贈) 통훈대부(通訓大夫) 사복시(司僕寺) 정(正) 박일산(朴一珊), 할머니는 참판(參判)을 지낸 김백형(金伯亨)의 딸 증 숙인(淑人) 고령 김씨(高靈金氏)이다. 아버지는 소격서(昭格署) 참봉(參奉)을 지낸 박계창(朴繼昌), 어머니는 어모장군(禦侮將軍) 이건(李謇)의 딸 증 정경부인(貞敬夫人) 인천 이씨(仁川李氏)이다. 부인은 강국경(姜國卿)의 딸 증 정부인(貞夫人) 진주 강씨(晉州康氏)이며, 박충윤(朴忠胤)·박충예(朴忠裔)·박충서(朴忠緖) 세 명의 형제가 있다.

[활동 사항]

박충후(朴忠後)[1552~1611]는 순천 박씨 세거지인 경상도 대구 도호부 하빈현(河濱縣) 묘골[지금의 대구광역시 달성군 하빈면 묘리] 출신이다. 1578년[선조 11] 처음 벼슬을 시작하여 음보(蔭補)로써 선공감(繕工監) 감역(監役)이 되었고, 함창 현감(咸昌縣監)에 임명되었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대구 도호부의 명사들과 함께 의병을 일으켰다. 이때 동생 박충윤·박충서도 창의하였다. 또한 도원수(都元帥) 권율(權慄), 초유사(招諭使) 김성일(金誠一)과 협력해 적의 길을 차단하는 공을 세워, 훗날 선무 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에 봉해졌다. 그러나 전란 도중 두 딸이 적병을 피해 낙동강에 투신하는 화를 당하였다.

1593년[선조 26] 통정대부(通政大夫)가 되었다. 그해 명나라 사신 서관란(徐觀瀾)·진효(陣效)·정응태(丁應泰)·양조령(梁祖齡)이 남하(南下)해 오자, 박충후는 대구 도호부 하빈현에 있는 자신의 집에서 이들을 접대하고, 장사(將士)에게는 미두(米豆)를 내어주었다. 이에 명나라 사신이 크게 감탄하여 “박씨는 충현의 후예이고, 하빈은 순임금이 질그릇을 굽던 곳 지금부터 천하의 선비들이 명승지를 말할 때는 이 강 언덕을 꼽으리라[朴氏忠賢後 河濱舜所陶 從今天下士 談勝數江皐]”라는 시를 지어 주었다. 그리고 관반(館伴) 이호민(李好閔)에게 명하여 시를 게판(揭板)케 하였다. 이에 조정에서는 박충후를 가선대부(嘉善大夫)로 품계를 올려 주었다. 1594년[선조 27]에는 무과에 급제하였다. 전란이 끝난 후, 태안 군수(泰安郡守)를 거쳐, 1605년[선조 38] 함안 군수(咸安郡守)로 부임하였다. 관직은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겸 오위도총부(五衛都摠府) 부총관(副摠管)까지 올랐다.

[묘소]

경상북도 성주군 선남면 오도리 지족당(知足堂)에 묘소가 위치해 있다.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