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사읍 방천리 박실원마을 문화유씨 집성촌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81010
한자 多斯邑 坊川里 朴實院 - 文化 柳氏 集姓村
이칭/별칭 다사읍 방천리 박실원마을 문화 류씨 집성촌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대구광역시 달성군 다사읍 방천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정재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박실원마을 - 대구광역시 달성군 다사읍 방천리
성격 집성촌

[정의]

대구광역시 달성군 다사읍 방천리에 있는 문화 유씨 집성촌.

[개설]

대구광역시 달성군 다사읍 방천리 박실원마을은 문화유씨(文化柳氏) 집성촌이다. 유반(柳班)이라는 다른 이름으로도 불리는 이 마을은 1557년 조선 선조(宣祖) 때 문화인 유희상(柳希祥)이 입향한 이래 문화유씨 집성촌을 형성하였다. 1998년에 편찬한 『달성 마을지』를 보면 총 81가구 중 문화유씨가 59가구라고 기록되어 있어 당시까지만 해도 문화유씨들의 집성촌이었던 것으로 보이며, 도시화된 지금도 유씨들이 많이 살고 있다.

[명칭 유래]

금호강 변에 있는 마을이라 들이 넓고, 예부터 나루터가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남아 있지 않다. 방천리금호강이 마을 앞을 둘러 흐른다 하여 방천이라 이름 붙였다. 자연 마을 박실원은 방천동에서 가장 크며 조선 시대 때 행인의 편의를 도와주는 박실원(朴實院)이 있었다 하여 박실원이라 불린다.

[자연환경]

마을의 동쪽과 남쪽, 서쪽을 와룡산[299.7m]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고, 마을의 북쪽은 금호강이 동에서 서로 흐르면서 넓은 충적 평야를 이루고 있는 북향의 배산임수형 마을이다.

[현황]

박실원마을에는 문화유씨들의 현조(顯祖)들을 기리기 위한 상징적 건물이 더러 있어 동성 마을의 문화적 전통을 드러내고 있다. 여호재(驪湖齋)는 입향조의 아들인 문화인 유전(柳佃)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재사이다. 통정대부(通政大夫) 승문원(承文院)과 판교(判校)를 역임한 인물이며 임진왜란 때 마을에 우거(寓居)하였다. 또한 척호정(陟岵亭)은 문화인 유기춘(柳基春)[1884∼1960]의 강학정이다. 유기춘은 일제 강점기 유학자이자 자선가로 자는 파일(和一)이고, 호는 오려(吾廬)이다.

시조는 고려 시대에 대승(大丞)이던 유차달(柳車達)이고, 유희상(柳希祥)의 대에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대구 와룡산 여호리로 옮겨온 이후 세거(世居)하였다. 증조할아버지는 유성배(柳聖培), 할아버지는 유진수(柳鎭秀), 아버지는 유동환(柳東煥)이고 어머니는 수원 백씨(水原白氏)이다. 이기욱(李基郁), 홍재하(洪在夏) 등과 함께 이만구(李晩求)의 문하에서 공부하였으나 세상이 어지러워지자 고향으로 돌아와 은일(隱逸)하며 공부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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