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08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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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漆谷誌』 |
영어공식명칭 | Chilgokji |
분야 | 지리/인문 지리,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문헌/전적 |
지역 | 대구광역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류명환 |
[정의]
1936년에 간행된 경상북도 칠곡군의 군지.
[편찬/간행 경위]
『칠곡지(漆谷誌)』는 1832년(순조 32)에 이천영(李天永)[1781~1844]이 편찬한 『거주지(莒州志)』를 바탕으로 하여 이수각(李壽珏)이 변화된 내용을 추가하고, 새롭게 항목을 신설하여 1936년에 간행하였다. 2002년에는 칠곡문화원에서 『칠곡지』 국역본을 발간하였다.
[형태/서지]
『칠곡지』는 크기는 세로 28.0㎝, 가로 18.6㎝이다. 4권 2책의 석판본으로 표제와 내제는 모두 ‘칠곡지’이다.
책머리에는 1832년에 작성한 이천영과 이이정(李以鼎)의 서문 및 1936년에 작성한 이수각의 서문이 있다. 권말에는 1832년에 작성한 정광술(鄭光述)의 발문과 1936년에 작성한 배석채(裵錫采)·전익동(全益東)·이돈엽(李敦燁)의 발문이 있다. 본문에서 새롭게 증보한 내용은 ‘속(續)’으로 구분하여 서술하였다.
[구성/내용]
『칠곡지』는 서두에 서(序)·목록(目錄)·범례(凡例)를 싣고, 말미에 발(跋)을 실었다.
권1은 건치연혁(建置沿革), 위치(位置), 지세(地勢), 지질(地質), 군명(郡名), 관직(官職), 성씨(姓氏), 산천(山川), 풍속(風俗), 방리(坊里), 호구(戶口), 전부(田賦), 군액(軍額), 성지(城池), 임수(林藪), 창고(倉庫), 군기(軍器), 관애(關阨), 진보(鎭堡), 봉수(烽燧), 학교(學校), 단묘(壇廟), 총묘(塚墓), 불우(佛宇), 공해(公廨), 누정(樓亭), 도로(道路), 교량(橋梁), 제언(堤堰), 장시(場市), 역원(驛院), 목장(牧場), 형승(形勝), 고적(古蹟), 토산(土産), 진공(進貢), 봉름(俸廩)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2는 환적(宦蹟), 비갈(碑碣), 책판(冊版), 제영(題詠), 권3은 문과(文科), 무과(武科), 생진(生進), 유일(遺逸), 음사(蔭仕), 남행(南行), 수직(壽職), 권4는 유행(儒行), 문학(文學), 충절(忠節), 효자(孝子), 효열부(孝烈婦), 수재(秀才) 순으로 되어 있다.
건치연혁조에는 1914년 인동군을 병합하여 읍치가 왜관(倭館)으로 옮겨진 사실까지 수록하였다. 지질조에는 칠곡군을 서북, 중앙, 서남으로 나누고 각각 사질양토(沙質壤土), 점질양토(黏質壤土), 사질(沙質)로 구분하였다.
방리조에는 왜관면, 지천면(枝川面), 칠곡면, 동명면(東明面), 가산면(架山面), 인동면(仁同面), 석적면(石積面), 북삼면(北三面), 약목면(若木面) 등 9개 면의 군(郡)에서의 거리와 소속 동리를 부기하였다.
호구조에는 1만 2762호, 6만 8816명[남자 3만 4927명, 여자 3만 3889명]으로 기록하였다. 환적조에는 1640년(인조 18)에 도임한 윤양(尹瀁)부터 1934년에 도임한 고긍명(高亘明)까지 174명의 명단이 실려 있다.
[의의와 평가]
『칠곡지』는 조선 후기에 제작된 읍지를 계승한 군지로서 1930년대까지 칠곡의 역사지리적 변화와 현황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