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13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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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大邱商業會議所 |
영어공식명칭 | The Daegu Board of Trade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대구광역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김일수 |
[정의]
일제 강점기 대구광역시에 있었던 지역 상공업 발전 진흥 단체.
[개설]
대구상업회의소는 조선총독부가 1915년 공포한 「조선상업회의소령」에 따라 설립된 대구의 경제 단체이다. 기존의 일본인상업회의소에 조선 경제인들을 참여시켜 대구 지역 상공업 발전을 추구하고자 하였으나 대구 일본인 경제인의 이익을 구현하는 매개 역할을 하였다.
[설립 목적]
대구상업회의소는 일본인과 조선인을 망라한 대구 지역 상공인의 친목 도모와 상공업 발전을 목적으로 하였다.
[변천]
1915년 설립된 대구상업회의소는 1930년 조선총독부의 「조선상공회의소령」의 공포에 따라 대구상공회의소로 개편되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대구상업회의소의 1923년대 전반기 규모를 보면 의원 총수 12명, 선거 유권자 수 206명, 선거권 및 피선거권자 수 31인, 경비 예산액 2,106원 정도였다. 1923년 대구상업회의소에 가입한 상사(商社)와 조합을 보면 일본인이 주도하는 가운데 조선인 한약상, 면포상, 기생, 여인숙, 음식점, 금은세공 등의 조합이 참여하고 있었다.
1923년 특별 평의원에 서병조, 부회장에 이병학, 상무위원에 이우진 등의 한국인이 임원으로 활동하였다. 장직상은 서병조의 뒤를 이어 1925년까지 특별 평의원을 거쳐 1925년 7월부터 1929년까지 임기 2년의 회장을 연임하였는데 첫 조선인 회장이자 마지막 조선인 회장이었다.
장직상은 조선총독부에 건의서를 제출하여 산업 발전을 위한 정책 마련을 촉구하였다. 조선 산업 개발의 대계를 위하여 조림의 촉성, 하천의 정리, 공업 진흥, 광업 개발, 수산업의 진전과 어항 축조, 주요 항만의 완비 등을 건의하였다. 1928년 대구상업회의소의 주요 활동은 경동선 시찰단 조직, 물산진흥전람회 대구협찬회 개최, 운송점(運送店) 1군 1점 주의 반대 결의, 대구선 시찰단을 조직하여 각지 유지와 상권 확장을 위한 간담회 개최, 의학전문학교 설치, 대구미곡거래소 설치 활동 등이었다.
[의의와 평가]
대구상업회의소는 1930년 대구상공회의소로 개편되기까지 대구의 조선인과 일본인 상공인들이 지역의 상공업 발전을 도모하기 위하여 활동한 경제 단체였다. 하지만 대구상업회의소는 조선인 장직상이 4년 동안 회장을 맡았으면서도 일본인이 주도하였고, 일본인 경제인의 이익을 실현하는 방식으로 운영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