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1754 |
---|---|
한자 | 大邱 鳩岩洞 古墳群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유적/고분 |
지역 | 대구광역시 북구 구암동 392|구암동 산74|구암동 산79-1|구암동 516 |
시대 | 고대/삼국 시대 |
집필자 | 민선례 |
조성 시기/일시 | 삼국시대 - 대구 구암동 고분군 조성 |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1975년 10월 20일~12월 24일 - 대구 구암동 고분군 영남대학교 박물관에서 56호분 발굴 조사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2015년 10월 21일~2016년 3월 4일 - 대구 구암동 고분군 영남대학교 박물관에서 1호분 발굴 조사 |
문화재 지정 일시 | 2018년 8월 7일 - 대구 구암동 고분군 사적 제544호로 지정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2019년 8월 28일~11월 15일 - 대구 구암동 고분군 대동문화재연구원에서 56호분 재발굴 조사 |
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6월 29일 - 대구 구암동 고분군 사적 문화재 지정 번호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개정에 따라 삭제 |
소재지 | 대구 구암동 고분군 - 대구광역시 북구 구암동 392 일원|산74|산79-1|516 |
출토 유물 소장처 | 국립대구박물관 - 대구광역시 수성구 청호로 321[황금동 70] |
성격 | 고분군 |
양식 | 돌무지 봉분|11자형 주·부곽 배치|구덩식 돌덧널무덤[수혈식 석곽묘]|돌방무덤[석실묘] |
크기(높이,지름) | 428,509㎡[면적] |
관리자 | 대구광역시 북구청 |
문화재 지정 번호 | 사적 |
[정의]
대구광역시 북구 구암동에 있는 삼국시대 고분군.
[개설]
대구 구암동 고분군(大邱鳩岩洞古墳群)은 대구에서 조성된 고분군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며, 팔거산성과 구암동 생활 유적이 서로 연결되어 있는 특성을 보인다. 2015년 지표조사를 통하여 222기가 추가로 확인되어 모두 379기의 봉토분이 확인되었다. 함지산 정상에서 구암중학교와 구화사 방면으로 뻗어 내린 2개의 능선에 대형 봉토분을 비롯한 가장 많은 봉토분이 능선을 따라 열상으로 분포한다. 구암고등학교 쪽의 능선 사면부에 소형 봉토분이 밀집하여 분포한다.
[위치]
대구 구암동 고분군은 대구광역시 북구 구암동 392번지 일대와 산74번지, 산79-1번지, 516번지이다. 팔거산성이 있는 함지산의 서남쪽 구릉 일대에 분포하고 있으며, 구릉의 아래쪽에는 택지개발이 이루어져 현재 아파트 단지가 조성되어 있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1942년 간행된 『조선보물고적조사자료(朝鮮寶物古蹟調査資料)』를 통하여 대구 구암동 고분군의 존재가 알려졌지만, 도굴 등으로 훼손된 채 방치되어 오다가 1975년 10월 20일부터 1975년 12월 24일까지 영남대학교 박물관이 구암동 고분군 56호분을 발굴 조사하였다. 하지만 이후에도 대구 구암동 고분군의 훼손 상태는 심각하여 2015년 보존과 보호 대책 마련을 위하여 대구 북구 구암동 고분군과 팔거산성에 대한 정밀 지표조사와 발굴 조사를 하였다. 2015년 10월 21일부터 2016년 3월 4일까지 영남문화재연구원에서 대구 구암동 고분군 1호분을 발굴 조사하였고, 2019년 8월 28일부터 2019년 11월 15일까지 대동문화재연구원에서 대구 구암동 고분군 56호분을 재발굴 조사하였다.
[형태]
대구 구암동 고분군은 봉분은 돌무더기로 덮고 매장 주체부는 주곽과 부곽이 11자 형태로 배치된 구덩식[수혈식(竪穴式)]돌덧널무덤으로 축조한 돌무지돌덧널무덤[적석석곽분(積石石槨墳)]이다. 면적은 42만 8509㎡이다. 봉분은 기본적으로 호석을 구비하였고, 한 봉분의 호석에 봉분을 잇대어 고분을 축조한 연접 방식이 확인된다. 이것은 구암동 고분군의 일반적인 봉분 형태일 가능성이 크다. 돌덧널무덤의 평면 형태는 세장방형이며, 뚜껑돌[개석(蓋石)]을 덮었다. 1·2호분의 뚜껑돌에서 검파형암각과 성혈, 일월성수도로 추정되는 암각이 확인된다.
[출토 유물]
대구 구암동 고분군에서는 굽다리접시[고배], 굽다리긴목항아리[대부장경호], 짧은목항아리[단경호], 유개발, 시루 등의 토도류와 큰칼[대도], 손칼[도자], 쇠투겁창[철모(鐵鉾)], 쇠도끼[철부], 쇠화살촉 등의 철기류, 재갈, 발걸이[등자], 은말띠꾸미개[은제운주(銀製雲珠)], 말띠드리개[행엽] 등의 마구류, 금동관편, 금동 허리띠편[과대편], 금귀걸이 등의 장신구류 등이 출토되었다. 대구 구암동 고분군의 출토 유물로 보아 5~6세기경 성장한 지역의 유력 정치세력에 의하여 축조된 것으로 판단된다. 1호분에서 출토된 금동관편과 금동 허리띠편[과대편], 금귀걸이 등의 장신구들은 5세기 중엽 이후 신라 중앙의 경주와 지방의 각 지역 수장급묘에서 크게 유행하는 형태와 유사한 점으로 보아 무덤 축조 당시 일대 수장층의 무덤 가운데 하나로 판단된다. 출토 유물은 국립대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현황]
대구 구암동 고분군은 팔거산성과 함께 구암동 고분군의 보존 관리와 정비를 진행하고 있다. 2018년 8월 7일 사적 제544호로 지정되었다. 그 후 2021년 6월 2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개정에 따라 지정 번호가 삭제되었다.
[의의와 평가]
대구 구암동 고분군은 주곽과 부곽이 11자 형태로 배치된 돌무지돌덧널무덤[적석석곽분]이며, 한 봉분에 봉분을 잇대어 축조한 연접 방식이 확인된다. 이러한 축조 방식은 신라와 가야 권역의 영남 지역에서는 확인되지 않는 특이한 구조로 다른 지역 고분들과 비교·검토가 필요하다. 또한 대구 구암동 고분군의 내부구조는 구덩식[수혈식]으로만 알려져 있었지만 새롭게 앞트기식[횡구식(橫口式)] 무덤[56-3호분]이 확인되어 금호강 유역 고분 연구 자료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