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179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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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大邱 泛魚洞 遺蹟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유적/유적(일반) |
지역 | 대구광역시 수성구 동대구로 300[범어동 380] |
시대 | 고대/남북국 시대,고려/고려 |
집필자 | 김병섭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2006년 6월 5일~8월 21일 - 대구 범어동 유적 영남문화재연구원에서 발굴 조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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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소재지 | 대구 범어동 유적 - 대구광역시 수성구 동대구로 300[범어동 380] |
성격 | 고분 유적|생활 유적 |
[정의]
대구광역시 수성구 범어동에 있는 남북국시대 고분 유적과 고려시대 생활 유적.
[개설]
대구 범어동 유적(大邱泛魚洞遺蹟)은 공동주택 신축에 앞서 영남문화재연구원에서 2006년 6월 5일부터 2006년 8월 21일까지 발굴 조사를 실시하였다. 동쪽 사면 지점과 남쪽 사면 지점을 각각Ⅰ구역 및 Ⅱ구역이라 구분하여 조사가 이루어졌는데, Ⅰ구역에서는 남북국시대 돌덧널무덤 1기, 고려시대 기와가마 2기와 근대 토광묘 4기가 조사되었다. Ⅱ구역에서는 고려시대의 수혈유구 6기, 도랑유구 1기, 고상건물지 2기, 우물 1기와 다수의 기둥구멍이 조사되었는데, 총 17기의 유구와 66점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위치]
대구 범어동 유적이 있는 대구광역시 수성구 범어동은 남쪽 무학산[200m]에서 북쪽으로 이어지는 능선과 능선 양쪽의 평지로 이루어져 있다. 대구 범어동 유적은 수성구청 서쪽의 사면 말단부 평지에 있으며, 서쪽으로 인접하여 범어천이 흐르고 있다. 북동쪽 능선상에는 조선시대의 범어동 유물산포지①, 남동쪽 사면부에는 삼국시대의 범어동 유물산포지②가 있다. 대구 범어동 유적은 수성구 범어동 380번지에 해당한다.
[형태]
대구 범어동 유적Ⅰ 구역의 남북국시대 돌덧널무덤은 유구 대부분이 파괴되고 남북 방향으로 벽석 1단만 남아 있으며, 인화문이 시문된 굽다리사발[臺附碗] 1점이 확인되었다. 고려시대 기와가마는 주축 방향이 동서 방향이며, 기반층을 굴착하여 그대로 사용하였다. 소성실의 평면 형태는 긴 배 모양이며, 연소실에서 소성실로 가면서 단벽이 생기며 높아지는 구조이다. 아궁이는 연소실에서 폭이 좁아지는 부분의 좌측과 우측에 할석을 세워서 축조한 적석식 화구 형태이며, 아궁이 벽석 상단에 상인방석을 올려놓은 터널형 구조로 추정된다. 후대의 삭평과 훼손으로 남아 있는 상태는 불량한 편이며, 무문양의 수키와와 암키와 조각이 다수 확인되었다.
Ⅱ구역에서는 고려시대 생활유구로 수혈유구, 도랑유구, 고상건물지, 우물, 기둥구멍 무리가 조사되었다. 수혈유구는 말각장방형, 타원형, 원형을 띠고 있으며, 청자사발과 암키와, 수키와 등이 출토되었다. 도랑유구는 Ⅱ구역 북동쪽 경사면에 있으며, 평면 형태는 선형, 단면 형태는 완만한 U자형이다. 고상건물지는 측면 1칸, 정면 1칸의 방형과 정면 2칸, 측면 1칸의 장방형으로 확인되었으며, 주변으로는 무질서하게 기둥구멍이 다수 배치되어 있다. 우물은 기반층을 원형으로 넓게 굴착하였는데, 아래로 내려가면서 좁아지다가 암반층에서 더욱 좁게 굴착하여 이단굴광의 형태를 띤다. 벽석은 강돌과 깬돌을 이용하여 위가 넓고 아래가 좁은 형태로 둥글게 쌓았다. 우물 내부에서는 편병, 수키와, 암키와 등이 출토되었다.
[현황]
대구 범어동 유적은 발굴 조사 후 공동주택이 조성되었다. 주변 지역은 이미 아파트, 단독주택, 학교 건물 등이 들어서면서 원형을 찾기 어렵다.
[의의와 평가]
대구 범어동 유적에서 남북국시대 돌덧널무덤과 고려시대의 생활 유적과 생산 유적이 함께 조사되어 당시 사람들이 살았던 생활 터전임을 보여 주고 있으며, 특히 고려시대 기와가마는 범어동 지역의 기와 생산과 공급에 대한 연구에 귀중한 기초 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