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1834
한자 大邱 時至洞 遺跡三
영어공식명칭 Daegu Siji-dong Yujeok3|Archaeological Site 3 in Siji-dong, Daegu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대구광역시 수성구 신매동 601|신매동 602
시대 고대/삼국 시대
집필자 김병섭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92년 4월~1993년 9월 - 대구 시지동 유적3 영남대학교 박물관에서 지표 조사 및 시굴 조사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93년 10월~1994년 10월 - 대구 시지동 유적3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발굴 조사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94년 7월~1995년 1월 - 대구 시지동 유적3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발굴 조사
원소재지 대구 시지동 유적3 - 대구광역시 수성구 신매동 601 지도보기
원소재지 대구 시지동 유적3 - 대구광역시 수성구 신매동 602 지도보기
성격 생활 유적

[정의]

대구광역시 수성구 신매동에서 발굴 조사된 삼국시대 생활 유적.

[개설]

대구 시지동 유적3시지동 택지개발 사업을 앞두고 영남대학교 박물관이 1992년 4월부터 1993년 9월까지 지표 조사 및 시굴 조사를 실시한 생활 유적이다. 그 과정에서 아파트 시공업자들에 의한 유적 파괴 행위가 자행되어 발굴 조사가 중단되었고, 개발에 따른 유적의 파괴가 얼마나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는가를 단적으로 보여 준 사례가 되었다. 그 후 긴급 수습 조사를 목적으로 국립문화재연구소가 아파트 건설 예정 부지[대구광역시 수성구 신매동 601]에 대하여 1993년 10월부터 1994년 10월까지 발굴 조사를 실시하였고, 이어서 욱수초등학교 건립 예정 부지[신매동 602]에 대하여도 1994년 7월부터 1995년 1월까지 발굴 조사를 실시하였다.

조사 결과, 아파트 부지는 유적의 파괴가 극심하게 이루어져 원형이 제대로 남은 유구를 확인하기 어려운 정도였으나, 수혈유구(竪穴遺構), 고상(高床) 건물터, 야외 화덕자리, 구상유구(溝狀遺構), 기둥구멍 등이 부분적으로 확인되어 넓은 범위에 생활 유적이 분포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욱수초등학교 부지에서는 삼국시대 수혈유구 5기, 화덕자리 3기, 우물 4기, 소토 퇴적 구간 10개소, 도로유구(道路遺構) 2기, 도랑 4기, 적석유구(積石遺構) 2기, 석렬유구(石列遺構) 등이 확인되었는데, 이 중에서 화덕자리 1기, 우물 1기, 적석유구는 조선시대의 것으로 추정된다.

[위치]

대구 시지동 유적3은 대구광역시 수성구의 신매동 601번지신매동 602번지 일대에 있다. 신매동성암산[472m], 안산[470m] 사이를 개석(開析)하여 흐르는 욱수천에 의하여 형성된 고산 선상지의 선앙과 선단부에 해당된다. 고산 선상지에는 청동기시대의 고인돌 유적과 마을 유적, 삼국시대 생활 유적이 대규모로 확인되었고, ‘대구 고산 지역 유적’으로도 총칭되고 있다. 대구 시지동 유적3도 대구 고산 지역 유적의 분포 범위에 포함되어 있다. 유적의 위치는 욱수천 서안의 충적지이며, 고산 선상지 선앙부에 해당된다. 주변으로 신매동 시지 지구 생활 유적Ⅰ, 신매동 시지 지구 생활 유적Ⅱ, 신매동 시지 지구 생활 유적Ⅲ, 신매동 시지 지구 생활 유적Ⅳ와 욱수동 삼국시대 생활 유적 등 다수의 유적이 조사되었다. 동쪽 욱수천 건너편 낮은 언덕에는 삼국시대 중산동 고분군Ⅰ과 욱수동·옥산동 토기 요지가 있다.

[형태]

대구 시지동 유적3이 있는 아파트 부지는 9개 지구로 나뉘어 조사가 진행되었는데, 보성 1·2·3지구와 남경 지구, 에덴 지구, 동서 1지구, 동서 3지구는 유적의 파괴가 심하여 생활 유적 일부만이 확인되었고, 동서 2지구와 진영 지구에서 생활 유적 다수가 확인되었다. 보성 1지구에서는 수혈유구 1기, 보성 2지구에서 정면 2칸, 측면 3칸의 고상 건물터, 보성 3지구와 에덴 지구에서는 상호 연결되는 도랑이 확인되었고, 남경 지구에서도 도랑과 기둥구멍 다수가 확인되었다. 동서 1·3지구는 파괴가 극심하여 유구는 확인되지 않고, 파손된 유물만이 수습되었고, 동서 2지구에서는 수혈 15기가 확인되었는데, 벽면을 따라 기둥구멍이 확인되거나 내부에서 화덕자리가 확인되는 것도 있어 일부 주거용으로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진영 지구에서는 부정형 수혈 6기와 적석유구 1기, 화덕자리 1기, 고상 건물터 1기가 확인되었다. 고상 건물터는 정면 2칸, 측면 3칸의 구조이며, 화덕자리는 주변에서 가마 벽체와 슬래그(slag) 등이 확인되고 있어 철 제련 시설일 가능성이 있다. 출토된 유물은 조각으로 확인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굽다리접시[高杯], 뚜껑[蓋], 접시[杯], 목짧은항아리[短頸壺], 긴목항아리[長頸壺], 큰항아리[大壺], 손잡이잔[把手附杯], 바리모양 그릇받침[鉢形器臺], 연질바리[軟質鉢], 손잡이[把手], 시루, 흙구슬[土球], 흙방울[土鈴], 그물추[漁網錘], 가락바퀴[紡錘車] 등으로 생활용 토제품이 다량 확인되었다.

욱수초등학교 부지의 수혈유구는 5기인데, 2호와 3호는 말각방형(抹角方形)[네 모서리를 둥글게 만든 네모 형태], 5호는 원형, 나머지 2기는 부정형이다. 3호는 말각방형을 띠며, 가장자리를 따라 내부에 기둥구멍 8개가 정연하게 배치되고 출입구와 화덕자리가 확인되었다. 평면 형태가 정연한 3기는 집터로 이용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우물은 평면 형태 원형을 띠며, 단면 형태는 통형이거나 위가 넓고 아래가 좁은 형태이다. 화덕자리는 타원형을 띠며, 내부에 자갈과 소토, 다량의 목탄이 확인되었다. 도로유구는 동에서 서로 이어지는 도로가 52m, 서에서 북으로 이어지는 도로가 15m 확인되었는데, 양 도로는 교차하면서 만나는 형태이다. 소토 퇴적 구간은 부정형의 수혈 형태로 확인되었는데, 소토와 토기 조각이 다량 확인되는 특징이 있다. 인공적인 유구가 아닌 것으로 보고되었으나, 이후 다양한 유적에서 조사된 결과를 통해 보면, 폐기장 등으로 이용된 수혈이거나, 지상 건물의 잔해로도 볼 수 있다.

수혈에서는 굽다리접시, 접시, 굽다리긴목항아리[臺附長頸壺], 짧은목항아리, 큰항아리, 손잡이잔 등의 토기류가 주로 조각으로 확인되었고, 쇠화살촉[鐵鏃], 쇠손칼[鐵刀子]도 출토되었다. 우물에서는 짧은목항아리, 연질항아리[軟質壺], 손잡이 조각, 굽다리접시 조각, 접시 등이 출토되었으며, 2호 우물에서는 복숭아씨, 살구씨, 솔방울, 박껍질, 밤껍질 등이 확인되었다. 화덕자리에서는 인화문토기 조각이 확인되었고, 소토 퇴적 구간에서는 항아리[壺], 긴몸항아리[長胴甕], 단지[甕], 시루, 숫돌[砥石], 쇠화살촉 등이 출토되었다. 채집 유물 중에는 흙구슬, 흙방울, 가락바퀴, 원판형 토제품, 말모양 흙인형[馬形土偶] 등의 토제품과 송풍관(送風管)이 확인되었다.

[현황]

대구 시지동 유적3의 발굴 조사가 완료된 후 아파트와 초등학교가 건립되었다. 주변 대부분 지역도 택지개발이 이루어져 원형을 찾기 어렵다.

[의의와 평가]

대구 시지동 유적3은 다양한 형태의 유구와 다른 시기의 유물이 복합되어 있어 발굴 조사 및 개별 유구의 해석에 어려움이 있었다. 게다가 아파트 부지의 경우에는 발굴 조사를 둘러싸고 벌어진 대규모 유적 파괴로 말미암아 더 큰 어려움이 있기도 하였다. 그럼에도 대구 시지동 유적3대구 시지동 택지개발 지구에 삼국시대 대규모 생활 유적이 존재하였음을 알려 준 유적이다. 특히 화덕자리나 송풍관 등의 유물을 통하여 생산 시설이 생활 유적 내에 동시에 존재하였을 가능성이 있음을 알려 주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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