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19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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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道南齋 |
영어공식명칭 | Donamjae |
이칭/별칭 | 전민련,전사헌,정선전씨 |
분야 | 종교/유교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대구광역시 북구 도남길 264-4[도남동 88]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도성탁 |
훼철|철거 시기/일시 | 1592년 - 이충사 소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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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축|증축 시기/일시 | 1910년 - 도남재 중수 |
현 소재지 | 도남재 - 대구광역시 북구 도남길 264-4[도남동 88] |
성격 | 재실 |
양식 | 홑처마 팔작지붕 목조 와가 |
정면 칸수 | 3칸 |
측면 칸수 | 2칸 |
소유자 | 정선전씨 문중 |
관리자 | 정선전씨 문중 |
[정의]
대구광역시 북구 도남동에 있는 전이갑·전의갑을 추모하는 재실.
[개설]
도남재(道南齋)는 고려 개국공신 전이갑(全以甲)·전의갑(全義甲)을 기리기 위하여 우헌(寓軒) 전민련(全敏連)[1546~1615]과 아들인 거옹(莒翁) 전사헌(全士憲)[1565~1618]이 건립한 재실이다. 전민련·전사헌 부자는 선대의 고향이었던 강원도 정선을 떠나 팔공산 자락 도남동으로 이거하였다. 이후 지척의 팔공산 자락에 정선전씨(旌善全氏) 선조인 전이갑·전의갑 형제의 순절지가 있음을 알고 추모할 수 있는 방도를 찾았다. 전이갑·전의갑은 공산전투에서 신숭겸(申崇謙)·김락(金樂) 등과 함께 왕건을 대신하여 순절하였던 충신이다.
전민련은 아들 전사헌을 한강(寒岡) 정구(鄭逑)[1543~1620]에게 보내어 전이갑·전의갑 두 선조를 제향할 방법을 물었다. 그 결과 지역 사림의 공의를 얻어 자신의 집 동편에 사우를 건립하였다. 당시 사우의 이름을 ‘이충사(二忠祠)’라 하였는데,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1554~1637]이 이름을 짓고 현판 글씨를 썼다. 이후 매년 봄가을에 제향을 이어 오다 임진왜란 때 이충사는 훼손되었다. 이에 전사헌이 본래의 자리에서 앞쪽으로 조금 옮겨 도남재를 지었다.
[위치]
[변천]
도남재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홑처마 팔작지붕을 얹은 목조 기와집이다. 정면에서 마주 보았을 때 왼쪽으로부터 2칸 방·1칸 마루이며, 마루 측면 밖으로 좁은 쪽마루가 놓여 있다. 전면으로도 반 칸 규모의 툇간을 두고 있다.
[형태]
도남재는 평대문을 끼고 있는 돌담장 안에 있는데,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홑처마 팔작지붕 건물이다. 정면에서 마주 보았을 때 왼쪽으로부터 2칸 방·1칸 마루이며, 마루 측면 밖으로 좁은 쪽마루가 놓여있으며, 전면으로도 반 칸 규모의 툇간을 두고 있다. 도남재 입구에는 퇴계의 13대손인 이충호[1872~1951]가 쓴 ‘이충사유허비각’이 있다.
[현황]
도남재는 1960년부터 1976년까지 지역 유림들의 시회 모임인 가남시사의 시회 장소로 사용되었으며, 2020년 팔거역사문화연구회에서 ‘유화당 범국회’를 시연하기도 하였다.
[의의와 평가]
도남재는 고려 개국 충신을 제향하는 사당으로, 이웃한 유화당(有華堂)과 함께 충효 교육장으로서의 의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