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1942
한자 鳳山書院
영어공식명칭 Bongsanseowon
분야 종교/유교
유형 유적/건물
지역 대구광역시 수성구 수성로12길 70[상동 340-1]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정병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844년 - 봉산서원 개축
훼철|철거 시기/일시 1864년~1871년 - 봉산서원 훼철
이전 시기/일시 1990년 - 봉산서원 이전
개축|증축 시기/일시 1990년 - 봉산서원 복원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97년 - 봉산서원에 유허비 건립
특기 사항 시기/일시 매년 음력 9월 19일 - 봉산서원에서 향사를 지냄
현 소재지 봉산서원 - 대구광역시 수성구 수성로12길 70[상동 340-1]지도보기
성격 서원
양식 홑처마|팔작지붕|민도리
정면 칸수 4칸
측면 칸수 2칸
소유자 일직손씨 참의공파 종중
관리자 일직손씨 참의공파 종중

[정의]

대구광역시 수성구 상동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이자 유학자인 손린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된 서원.

[개설]

봉산서원(鳳山書院)문탄(聞灘) 손린(孫遴)[1566~1628]을 배향하는 서원이다. 손린은 16~17세기 대구 유학 부흥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위치]

봉산서원대구광역시 수성구 상동 340-1에 있다.

[변천]

1766년 대구부 수성리 옛터에 사우를 건립하였다가, 1799년 사우를 대구부(大邱府)의 남쪽 10리 하수서(下守西)에 있는 금봉산(金鳳山)[오늘날 두류공원]으로 이건하였다. 1844년(헌종 10) 2월에 ‘봉암사(鳳巖祠)’에서 ‘봉산서원’으로 높여 불렀지만, 20년 만에 서원 철폐령으로 1864년~1871년 사이에 훼철되었다. 즉, 현재의 자리가 아니라 옛날 금봉산에서 훼철을 맞았다. 그로부터 1세기가 지난 1990년 지금의 위치에 지행당(砥行堂)과 좌우의 봉암사(鳳巖祠)[동재]와 송독재(誦讀齋)[서재]로 복원되었다. 1997년 봉산서원에 유허비를 세웠다.

[형태]

봉산서원 강당의 전체 규모는 정면 4칸, 측면 2칸이며, 좌우 1칸씩 누마루와 중앙 2칸의 대청으로 되어 있다. 구조는 5량가(樑架)[종단면상에 도리가 다섯 줄로 걸리는 가구 형식]이며 양식은 민도리, 홑처마와 팔작지붕 구조이다.

봉암사는 정면 1칸과 측면 1칸, 송독재는 정면 2칸과 측면 1칸, 문채는 정면 3칸과 측면 1칸이며, 모두 홑처마와 맞배지붕이다.

[현황]

매년 음력 9월 19일에 봉산서원에서 향사를 지낸다.

[의의와 평가]

봉산서원은 사당 성격의 서원이지만, 청호서원과 더불어 대구 일직손씨들의 구심점을 형성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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