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22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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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上仁洞 丹陽禹氏 世居地 |
영어공식명칭 | Residential place of Danyang Woo clan in Sangin-dong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대구광역시 달서구 상인동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박세욱 |
[정의]
대구광역시 달서구 상인동에 있는 단양 우씨 세거지.
[개설]
단양우씨(丹陽禹氏시)의 시조는 중국 하(夏)나라 우왕(禹王)의 후손으로 알려진 우현(禹玄)이다. 우현은 고려에 건너와 단양에서 살면서 1014년(현종 5) 진사시에 급제하여 정조호장(正朝戶長)을 지내고 문하시중평장사(門下侍中平章事)에 추증되었다. 이후 찬성사(贊成事)를 지낸 우현의 10세손 우현보(禹玄寶)[1333~1400]가 고려 공양왕 때 단양부원군(丹陽府院君)에 책봉되면서 후손들이 본관을 단양으로 하여 세계를 이어 오고 있다.
[명칭 유래]
상인동의 지명은 ‘우리못’이라고도 불리는 ‘상인지’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상인못이 있던 지역은 ‘상인동’, 하인못이 있던 지역은 ‘하인동’으로 불렸다는 지역민의 증언 역시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도두뱅이 산 앞에 있던 하인못은 ‘신못’ 혹은 ‘신제’로 기록되어 있는데, 현 상원고등학교 자리이다. 지역의 상인산에서 따온 것이라고 하며, 상인사라는 절이 있었다는 설도 있다. 월촌(月村)은 달비[월배] 북쪽에 있던 마을로, 입향조 우전(禹奠)이 낙향하던 당시에 우전 일행을 비추던 달이 유난히 밝게 비추었다는 이야기가 있어서 ‘월촌’이라고 하였다. ‘안마’라고 불리기도 하였다.
[형성 및 변천]
단양우씨 13세손 우전이 정도전 일파의 정치적 보복을 피하여 상인동에 정착하면서 세거하게 되었다. 우배선(禹拜善)[1569~1621]과 우배순(禹拜純)이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활동하면서 가문의 명성을 크게 떨쳤다.
[자연환경]
대구광역시 달성군과 경상북도 청도군, 경상남도 창녕군 사이에 있는 비슬산(琵瑟山) 삼필봉(三筆峰) 자락에 월촌(月村)·도평(都坪)·달배(達背)·채정(蔡亭) 등 4개의 자연부락이 형성되어 있었다.
[현황]
상인동 단양우씨 세거지에는 2021년 현재 100여 가구의 단양우씨가 거주하고 있다. 택지조성사업으로 인하여 상인동 일대의 많은 자연부락들이 해체되자 단양우씨 월곡문중은 장지산을 중심으로 월곡역사공원을 조성하여 단양우씨의 문화를 계승하고 있다. 월곡역사공원에 있는 유적 이외에도 대구광역시에 소재하는 단양우씨 유적으로는, 덕동사(德洞祠)·도암재(島岩齋)·돈평재(遯坪齋)·백록당(白鹿堂)·신덕재(新德齋)·열락당(悅樂堂)·와룡정(臥龍亭)·월평재(月坪齋)·이호사(梨湖祠)·인산재(仁山齋)·직지재(直止齋)·첨백당(瞻栢堂)·평광유허비(坪廣遺墟碑)·효열비(孝烈碑)·경현당(景賢堂)·동계재(東溪齋)·경희정(景喜亭)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