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2269 |
---|---|
한자 | 杜師忠 |
영어공식명칭 | Du Sachung |
이칭/별칭 | 연재(蓮齋),모명(慕明)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대구광역시 수성구 만촌동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박세욱 |
활동 시기/일시 | 1592년 - 두사충 명나라 원군으로 임진왜란 참전 |
---|---|
활동 시기/일시 | 1597년 - 두사충 명나라 원군으로 정유재란 참전 |
거주|이주지 | 달구현 - 대구광역시 |
묘소|단소 | 두사충 묘소 - 대구광역시 수성구 달구벌대로525길 14-21[만촌동 715-1] |
성격 | 무관 |
성별 | 남성 |
본관 | 두릉(杜陵) |
[정의]
조선 후기 귀화하여 대구에 정착한 명나라 무관.
[가계]
두사충(杜師忠)[?~?]의 본관은 두릉(杜陵)이며, 호는 원래 연재(蓮齋)였으나 조선에 귀화한 후 명나라를 기린다는 의미로 모명(慕明)으로 바꾸었다. 아버지는 기주자사(冀州刺史)를 지낸 두교림(杜喬林)이고, 아들은 두산(杜山)·두일건(杜逸建)이다.
[활동 사항]
두사충은 1592년(선조 25) 12월 명나라 원군으로 임진왜란에 참전하여 이여송(李如松) 휘하의 수륙지획주사(水陸指劃主事)로 병영과 진터를 구축하는 임무를 맡았다. 벽제관(碧蹄館) 전투에서 패배한 뒤 참수형을 당할 처지에 놓였지만 좌찬성이던 약포(藥圃) 정탁(鄭琢)의 적극적인 구명으로 면죄부를 받고 본국으로 돌아갔다.
1597년 정유재란이 발발하자 두사충은 유정(劉綎)을 따라 다시 원병으로 조선에 참전하였다. 이순신(李舜臣)[1545~1598]과 함께 노량해전에 출정하기도 하는 등 당시 문·무신들과의 교유가 각별하였다. 전란이 끝난 후 두 아들과 함께 조선에 귀화하여 달구현[현 대구광역시]에 정착하였다. 조정에서 현 경상감영공원 일대의 땅을 하사하였으나, 1601년 경상감영이 이전하여 오면서 지금의 수성구 지역으로 이거하였다.
[학문과 저술]
두사충의 저술로는 『모명유결(慕明遺訣)』이 있다. 두사충이 전국을 돌아다니며 풍수지리에 관한 경험과 지식을 정리한 책으로, 정탁의 집안에서 전해 오던 것을 영인하여 1971년 출간되었다.
[묘소]
두사충의 묘소는 수성구 달구벌대로525길 14-21[만촌동 715-1]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