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235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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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異才 |
영어공식명칭 | Lee Jae |
이칭/별칭 | 호족,호국의영도장,중알찬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왕족·호족 |
지역 | 대구광역시 |
시대 | 고대/남북국 시대 |
집필자 | 이영호 |
[정의]
남북국시대 지금의 대구 지역인 신라 수창군의 호국성 성주.
[개설]
이재(異才)[?~?]는 908년(신라 효공왕 12) 10월에 호국의영도장(護國義營都將) 중알찬으로 있으면서 수창군(壽昌郡)[중심지는 대구광역시 수성구 중동·상동 및 달성군 가창면 일대]의 호국성 남령(南嶺)에 팔각등루(八角登樓)를 세워 국가의 경사와 병란이 끝나기를 기원하였다.
[활동 사항]
이재의 직명인 호국의영도장은 어떤 직책인지 정확히 알 수 없다. 중알찬은 중아찬의 다른 이름이므로, 6두품으로서 군 태수 정도의 직위에 있었다고 추정된다. 신라 말기의 혼란 속에서 비록 반독립적인 호족으로 변신하였으나 반신라적 자세를 취한 것이 아니라 친신라적 입장을 고수하였다. 이러한 입장은 최치원(崔致遠)이 쓴 기문에서 “참으로 재가(在家)의 대사(大士)요, 울연히 본국(本國)의 충신(忠臣)”이라 하거나 “반야(般若)[지혜]로 간과(干戈)를 삼고, 보리(菩提)로 갑주(甲冑)를 삼아 한 경내를 제대로 안정시켰는데 그 일이 겨우 10년밖에 걸리지 않았다”라고 한 데서 짐작할 수 있다.
이재는 임금의 은혜에 보답하는 것은 불사를 융성하게 하는 것이며, 오직 법등을 높이 매달아 병화(兵火)를 속히 해소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팔각등루가 완성되자 이재는 공산(公山) 동사(桐寺)[현 팔공산 동화사]의 홍순대덕을 좌주로 삼고 여러 승려들을 초청하여 경찬법회를 성대히 개최하였다. 이재의 요청으로 최치원이 「신라수창군호국성팔각등루기」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