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239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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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夏光臣 |
영어공식명칭 | Ha Kwangsin |
이칭/별칭 | Ha Kwangsin |
분야 | 종교/유교,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효자·열녀 |
지역 | 대구광역시 수성구 만촌동 |
시대 | 고려/고려 후기 |
집필자 | 구본욱 |
추모 시기/일시 | 1327년 - 하광신 효자 정려를 받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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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지 | 입암리 - 대구광역시 남구 봉덕동 |
거주|이주지 | 만촌동 - 대구광역시 수성구 만촌동 |
사당|배향지 | 하효자정려각 - 대구광역시 수성구 화랑로42길 6[만촌동 389-1] |
성격 | 효자 |
성별 | 남성 |
본관 | 달성(達城) |
[정의]
고려 후기 대구 출신의 효자.
[가계]
하광신(夏光臣)[?~?]의 본관은 달성(達城)이다. 증조할아버지는 대장군 하치운(夏致雲)이고, 할아버지는 달성군(達城君)에 봉해진 하용(夏溶)이다. 아버지는 문하찬성 하일영(夏日映)이다. 아들은 하득주(夏得柱)·하석주(夏石柱)이다.
[활동 사항]
하광신은 대구 입암리[현 대구광역시 남구 봉덕동]에서 태어났다. 고려 명종(明宗) 때 이부시랑을 역임하였다.
하광신은 어릴 때부터 효성이 지극하였다고 하며, 다음과 같은 일화가 전한다. 눈이 채 녹지 않은 늦겨울 어느 날 저녁 병들어 누워 있던 어머니가 갑자기 복숭아가 먹고 싶다고 말하였다. 하광신이 집 뒷산에 올라 막막해하고 있을 때 큰 호랑이 한 마리가 나타나 등에 올라타라는 몸짓을 하였다. 하광신이 등에 올라타자 호랑이는 캄캄한 밤길을 내달려 산속 외딴 집 앞에 멈춰 섰다. 하광신이 열린 문틈으로 보니 제사상이 차려져 있고 음식들 중에 복숭아가 한 접시 놓여 있었다. 집 주인이 산에서 복숭아를 따 제사 때 쓰려고 고이 보관하고 있던 거였다. 하광신은 사정을 이야기하고 복숭아를 몇 개 얻어서 어머니에게 드릴 수 있었다고 한다.
하광신은 어머니가 사망하자 묘소 옆에 움막을 짓고 3년 동안 정성껏 시묘를 하였다. 이 소식을 들은 충숙왕은 하광신의 효행을 칭찬하며 정려(旌閭)를 내렸다.
[상훈과 추모]
1327년(충숙왕 14) 나라에서 하광신에게 효자 정려를 내렸다. 하효자정려각(夏孝子旌閭閣)은 1989년 6월 15일 대구광역시 문화재자료 제18호로 지정되었다. 그 후 2021년 6월 2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개정에 따라 지정 번호가 삭제되었다. 정려비문은 강한(江漢) 황경원(黃景源)이 글을 짓고 지평(持平) 이약채(李若采)가 글씨를 썼다. 하효자정려각은 원래 봉덕동에 있었으나 후손들이 수성구 만촌동 지역으로 이거함에 1781년(정조 5)에 지금의 수성구 화랑로42길 6[만촌동 389-1]에 중건하였다. 하광신의 정려각은 대구광역시와 경상북도에서 가장 오래된 정려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