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2626 |
---|---|
한자 | 文洪義 |
영어공식명칭 | Moon Hongui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대구광역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최재성 |
출생 시기/일시 | 1921년 1월 3일 - 문홍의 출생 |
---|---|
수학 시기/일시 | 1940년 - 문홍의 대구사범학교 심상과 4학년 재학 |
활동 시기/일시 | 1940년 11월 23일 - 문홍의 대구사범학교 문예부 참여 |
활동 시기/일시 | 1941년 2월 15일 - 문홍의 대구사범학교 비밀결사 다혁당 결성 참여 |
활동 시기/일시 | 1941년 8월 - 문홍의 일제 경찰에게 체포 |
활동 시기/일시 | 1945년 3월 6일 - 문홍의 만기 출소 |
몰년 시기/일시 | 1951년 1월 21일 - 문홍의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963년 - 문홍의 대통령표창 추서 |
추모 시기/일시 | 1977년 - 문홍의 건국포장 추서 |
추모 시기/일시 | 1990년 - 문홍의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
출생지 | 합천 관기리 - 경상남도 합천군 묘산면 관기리 |
학교|수학지 | 대구사범학교 - 대구광역시 중구 |
활동지 | 대구 - 대구광역시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성 |
대표 경력 | 다혁당 당원 |
[정의]
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개설]
문홍의(文洪義)[1921~1951]는 1921년 1월 3일 지금의 경상남도 합천군 묘산면 관기리에서 태어났다. 대구사범학교 재학 중 교내 비밀결사 조직인 문예부와 다혁당(茶革黨)을 결성하고 활동하다 일제 경찰에게 체포되었다.
[활동 사항]
문홍의는 대구사범학교 심상과 4학년에 재학 중이던 1940년 11월 23일 5학년생 이태길(李泰吉)·강두안(姜斗安)·박찬웅(朴贊雄)·박효준(朴孝濬), 동급생 유흥수(柳興洙)·이동우(李東雨), 3학년생 김근배(金根培) 등과 함께 비밀결사 조직인 대구사범학교 문예부를 결성하였다. ‘문예부’로 이름을 지은 것은 표면상으로는 문예 활동을 표방함으로써 일제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서였다. 문예부원들은 매주 토요일에 각자가 쓴 작품을 가지고 모여 감상하고 비평하며 서로 의견을 교환하였고, 이때 조선의 역사와 문화 및 시국에 대한 의견도 나누었다. 1941년 3월 초에는 부원들의 작품을 편집하여 기관지 『학생』을 발간하기도 하였다.
문홍의는 1941년 2월 15일 이동우·권쾌복(權快福)·배학보(裵鶴甫)·김효식(金孝植)·유흥수(柳興洙) 등과 함께 대구사범학교 비밀결사 조직 다혁당을 결성하였다. 다혁당은 기존에 결성되어 있던 교내 비밀결사 조직인 문예부와 연구회를 발전적으로 확대 개편하여 민족의식을 앙양하고 독립을 위한 실력 양성을 목표로 하였다.
문홍의는 다혁당의 연구부 책임을 맡아 활동하였다. 다혁당원들은 역사와 문화 관련 서적을 돌려보고 독후감을 발표하였으며, 국내외 정세에 대하여 토론하였다. 또한 공휴일이나 일요일에는 대구 앞산 등지에서 학교에서 배운 교련 내용을 바탕으로 군사훈련을 하였으며, 학교를 졸업한 뒤에는 교사가 되어 제자들에게 민족의식을 고취하고 유능한 인재를 길러 독립 역량을 강화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1941년 7월 말 대구사범학교 비밀결사 윤독회(輪讀會)[문예부의 전신]가 발간한 항일 문예지 『반딧불』이 일제 경찰에게 발각되어 대구사범학교 내 비밀결사 조직이 드러났다. 그 결과 경찰의 수사가 확대되어 대구사범학교 내 비밀결사 조직이었던 백의단·윤독회·문예부·연구회·다혁당에서 활동한 교직원·학생·동문·학부형 등 300여 명이 체포되었다. 문홍의도 이때 체포되어 「치안유지법」과 「출판법」 위반 혐의로 징역 2년 6월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르다 1945년 3월 6일 만기 출소하였다. 문홍의는 1951년 1월 21일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문홍의의 공적을 기려 1963년 대통령표창, 1977년 건국포장,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