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367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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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공식명칭 | Baejamot |
이칭/별칭 | 대불지,불상지,배채못 |
분야 | 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 |
유형 | 지명/시설 |
지역 | 대구광역시 북구 복현동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우종현 |
[정의]
대구광역시 북구 복현동에 있었던 저수지.
[개설]
배자못의 건립 시기는 명확하지 않으나 고려시대 때부터 있었던 못으로 알려져 있다. 1768년 편찬된 것으로 추정되는 『대구읍지』에는 배자못에 대한 기록은 없고 대신 배자못의 다른 이름인 ‘불상제’에 대한 기록은 있다. 기록에는 대불상제(大佛上堤)와 소불상제(小佛上堤)가 있었다고 한다. 특히, “대불상제는 동중(東中)에 있고, 둘레가 4,295척[약 1,302m]이고 수심이 5척 3촌[약 1.6m]”이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대구읍지』에 기록된 저수지 중에서는 감삼제[감삼못]에 이어 두 번째로 큰 규모이다. 소불상제는 동중(東中)에 있고, 둘레가 660척[약 200m]이고 수심이 3척 4촌[약 1m]이다.
[변천]
배자못은 대불지(大佛池) 또는 배채못으로도 불렸다. 못 주변에 배씨와 채씨가 많이 거주하여 ‘배채못’이었고 이것이 ‘배자못’으로 변하였다는 설과 저수지를 축조하다 큰 불상이 발견되어 ‘대불지’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하여 오지만 1768년에 편찬된 것으로 추정되는 『대구읍지』에는 불상지(佛上池)로 기록되어 있다. ‘대불지’의 명칭은 1918년 일제가 제작한 「대구지형도」에 처음 등장한다. 이후 1938년 5월 못이 확장되었는데, 못의 규모는 약 12만 2000㎡였으며, 형태는 남북으로 길쭉하였다.
배자못은 1960년대만 해도 중요한 농업용수 공급원이었을 뿐만 아니라 먹을 수 있는 말을 채취할 만큼 물이 깨끗하였고 물고기도 많았다. 여름에는 못에서 멱을 감고 못 둑에는 낚시꾼이 많았다고 전한다. 그러나 1975년 검단공단이 생기고 아파트와 주택이 들어서면서부터 생활오수와 공장폐수로 물은 급격히 오염되기 시작하여 기형 물고기가 발견될 정도였다. 이후 1994년 배자못을 매립하고 그 자리에 복현화성아파트, 복현보성아파트, 복현서한아파트, 대백아파트 등이 대규모로 들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