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45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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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改新敎 |
영어공식명칭 | Protestantism |
분야 | 종교/기독교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
지역 | 대구광역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병희 |
[정의]
대구광역시에서 활동하고 있는 기독교.
[개설]
개신교는 종교개혁 이후 로마가톨릭교회에서 분리된 기독교 교파를 두루 일컫는 말이다. 서기 1세기 예수를 따르던 제자들이 예수의 생애와 가르침을 바탕으로 『신약성경』을 저술하였다. 개신교인은 성서를 하나님 말씀으로 받아들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임과 부활, 승천, 재림, 심판을 믿고, 하나님의 인류 구원에 대하여 유일한 진리로 받아들인다. 성서에 대한 해석에 따라 로마가톨릭교회, 동방정교회, 개신교[protestantism]의 3대 교회로 분리되었다. 개신교는 교리의 성격에 따라 다시 장로교, 감리교, 침례교, 성결교 등 300여 개의 교파로 나뉘었다.
개신교라는 말은 16세기 개혁운동으로 생긴 개신교를 총칭하여 사용하고 있다. 우리나라와 중국에서 로마가톨릭교회는 보통 천주교로 알려져 있고, 프로테스탄티즘은 개신교 또는 기독교로 불리고 있다. 개신교는 16세기에 선교에 대하여 직접적인 관심을 가지지 못하였으며, 17세기에도 큰 변화가 없이 선교에 대하여 부정적인 견해가 지배적이었다. 개신교가 비교적 새롭게 선교를 의식하기 시작한 것은 네덜란드와 영국이 해외시장을 개척하기 위하여 해외로 진출하기 시작하였을 때였다. 18세기는 대륙의 경건주의 운동과 영국의 복음주의 각성 운동으로 선교 운동이 일어났으며, 19세기 중엽부터 미국, 영국, 유럽의 프로테스탄티즘의 여러 교파가 세계 각지로 선교 지역을 확대하여 나갔다.
[한국의 개신교]
개신교가 우리나라에 처음 전래된 것은 1832년(순조 32) 7월 17일, 만주에서 한국인을 상대로 전도하려던 유태계 독일인 칼 귀츨라프(Karl Friedrich August Gutzlaff)에 의해서였다. 칼 귀츨라프는 앰허스트호에 승선하여 서해안 홍주 고대도에 상륙하였고, 17일 동안 체류하면서 외교관계와 선교사업을 위하여 정식으로 입국하려 하였다. 8월 9일 서울에서 국왕의 회신을 갖고 통역관을 대동하고 내려온 특사는 귀츨라프가 보냈던 서한과 선물을 도로 돌려주면서, 중국 황제의 허락이 없이는 외국과 통상할 수 없음을 알려 주었다. 그들은 한국의 관리들이 약속한 대로 식량을 공급 받은 후 한국의 해안을 떠났으며, 한국 선교의 뜻을 이루지 못하고 돌아갔다. 이후 1866년 9월 2일, 윌리암슨 선교사의 후원으로 두 차례에 걸쳐 한국을 방문한 토마스(Robert Jermain Thomas) 선교사가 평양 대동강 가에서 순교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한국 개신교사에서 ‘첫 순교’였다.
우리나라에서 개신교 선교가 정식으로 시작된 시기는 1882년 슈펠트 조약 이후부터라 할 수 있다. 1884년 6월 미국 감리교 선교사 맥클레이(Robert Samuel Maclay)가 한국에서의 선교를 요청하여 7월 3일부터 황제의 허락을 얻어내기에 이르렀으며, 1884년 9월 20일 중국에 있던 미국 북장로교의 알렌(H. N. Allen) 의료 선교사가 미국 공관의 공의(公醫)로 한국에 입국하였다. 1885년 4월 5일 북장로교 선교사 언더우드(Horace Grant Underwood)와 감리교 선교사 아펜젤러(Henry Gerhard Appenzeller) 부부가 인천 제물포항에 입국함으로써 한국 선교가 실현되기 시작하였다.
한국에 도착한 언더우드와 아펜젤러 선교사는 선교의 자유가 허락되지 않은 상황에서 교육 선교에 치중하였다. 1887년 조불수호통상조약을 통하여 선교활동이 가능해지자 선교사들은 한국인 조사(助事)들의 안내를 받으며 지방 선교 여행을 시작하였다. 그런 가운데 1890년 중국 산둥성 주재 미국 북장로교회 선교사 네비어스(John Livingston Nevius)가 한국을 방문하여 ‘자전(自傳)’[self-propagation], ‘자립(自立)’[self-supporting], ‘자치(自治)’[self-governing]를 선교 정책으로 체계화하면서 크게 성장하였다. 이후 1907년 대부흥 운동은 한국 개신교가 부흥하는 전환점이 되었다.
[대구 지역의 개신교]
개신교의 대구 지역 선교는, 선교지 분할 정책으로 부산선교지부를 호주 빅토리아 선교부로 이양하고 대구선교지부를 준비해 온 베어드(William M. Baird) 선교사를 대신하여 1897년 11월 대구로 부임해 온 아담스 선교사에 의하여 비로소 시작되었다. 대구광역시는 선교지 분할 정책으로 해방 전까지 장로교의 주 선교지였으며, 그 외에 구세군[1909]과 성결교[1923]가 선교활동을 하였다. 해방 이후, 침례교[1958], 감리교[1980], 순복음[1981], 기타 여러 교단이 교회를 세우고 전도 활동을 하고 있다. 현재, 대구광역시는 장로교 1,471개 교회, 성결교 36개 교회, 감리교 35개 교회, 침례교 46개 교회, 구세군 9개 교회, 순복음 17개 교회가 선교활동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