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209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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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聾淵書堂 |
영어공식명칭 | Nongyeon Village School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대구광역시 동구 용천로 323[용수동 665-2] |
시대 | 조선/조선 후기,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송은석 |
건립 시기/일시 | 1644년 - 농연서당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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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축|증축 시기/일시 | 1929년 - 농연서당 중건 |
현 소재지 | 농연서당 - 대구광역시 동구 용천로323[용수동 665-2] |
성격 | 서당 |
양식 | 팔작지붕 |
정면 칸수 | 5칸 |
측면 칸수 | 1.5칸 |
소유자 | 경주최씨 대암공파 종중 |
관리자 | 경주최씨 대암공파 종중 |
[정의]
대구광역시 동구 용수동에 있는 경주최씨 대암공파 종중 서당.
[개설]
대암(臺巖) 최동집[1586~1661]은 현 대구광역시 동구 둔산동 옻골 마을 경주최씨(慶州崔氏) 입향조로 1640년(인조 18) 인질의 신분으로 중국 선양[瀋陽]으로 가는 봉림대군[효종]의 사부로 선발이 되었지만, 일이 여의치 않아 심양 길에 합류하지 못했다. 그 후 1644년(인조 22)에 명나라가 멸망하자 숭정처사(崇禎處士)를 자임하며 이곳으로 들어와 정자를 짓고 평생을 은거하였다.
[위치]
대구광역시 동구 파계 삼거리에서 동화사 방면으로 3.8㎞쯤 가다 보면 우측으로 신안사랑마을요양원으로 가는 급한 우회전길이 있다. 이 길을 따라 남쪽으로 마을을 통과하여 1㎞쯤 가면 왼쪽으로 독불사와 소나무 숲이 있고 그 우측으로 농연서당이 보인다.
[변천]
농연서당은 1644년경 경주최씨 대암공파 파조인 최동집이 대구광역시 동구 용수동 농연바위 위에 건립한 정사를 기원으로 한다. 이후 최동집의 5세손인 최흥원이 복원하였으나 1930년 대홍수와 1980년 화재로 소실된 것을 1981년 복원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형태]
농연서당은 정면 5칸, 측면 1.5칸 규모의 홑처마 팔작지붕 건물이다. 정면에서 바라보았을 때 평면은 좌에서 우로 2칸 방, 2칸 대청, 1칸 방이며, 앞쪽으로 반 칸 툇간이 있다. 담장은 돌담이며 대문은 1칸 규모의 평대문이다.
[현황]
농연서당 관리는 경주최씨 대암공파 종중에서 하고 있으며 관리 상태는 양호하다. 근래에 대구광역시 동구 팔공산 지역이 팔공산 올레길 등으로 개발이 되어 찾는 이들이 늘고 있다.
[의의와 평가]
경주최씨는 대구광역시 동구 팔공산 자락에 세거하고 있는 주요 토박이 성씨 중 하나이다. 그중에서도 농연서당을 중심으로 하는 용수동의 최씨들은 조선 중기 대구의 대표적 유학자 중의 한사람인 최동집의 후손들이다. 따라서 농연서당은 이 지역의 인물·역사·전통을 이해하는 데 있어 귀중한 유적이다. 또한 「농연구곡(聾淵九曲)」의 소재라는 점에서도 의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