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8067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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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壽峰精舍 |
영어공식명칭 | Soobongjeongsa |
이칭/별칭 | 수백당 |
분야 | 종교/유교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대구광역시 달성군 화원읍 인흥3길 16[본리리 401-2]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백지국 |
[정의]
대구광역시 달성군 화원읍 본리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에 세운 정사.
[개설]
수봉정사(壽峰精舍)는 수봉(壽峰) 문영박(文永樸)[1880~1930]을 기리고 후손들의 학문과 교양을 쌓기 위한 교육 장소로 건립되었다. 문영박의 본관은 남평(南平), 자는 장지(章之)로 남평 문씨 본리 세거지(南平文氏本里世居地)를 번성시킨 인물로 평가 받는다. 1919년부터 별세할 때까지 전국 각지를 오가며 군자금을 모금하여 대한민국 임시 정부에 지속적으로 전달하였다. 1930년 12월 문영박이 별세하자 1931년 대한민국 임시 정부에서 이교재(李敎載)를 국내에 밀파하여 그를 애도하는 추조문과 특발문(特發文)을 보냈다. 그러나 일본의 삼엄한 감시 때문에 전달하지 못하고 자택 천장에 감추어 두었는데, 광복 후 발견되어 후손에게 전달되었다. 나라에서 문영박의 공훈을 인정하여 1980년 건국 포장, 1990년 건국 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위치]
수봉정사는 대구광역시 달성군 화원읍 인흥3길 16[본리리 401-2]에 있다. 대구 화원 중학교[달성군 화원읍 성암로 48] 정문에서 남쪽으로 약 50m를 이동하면 앞산 순환로·대구 수목원, 화원 자연 휴양림·남평 문씨 본리 세거지, 고령·화원 옥포 IC로 향하는 삼거리가 나온다. 화원 자연 휴앙림·남평 문씨 세거지 방향으로 약 1㎞ 직진하면, 왼쪽으로 남평 문씨 본리 세거지 안내판과 문화 관광 안내사의 집이 보인다. 이곳에서 안내판을 따라 약 140m 이동하면 나오는 남평 문씨 본리 세거지 주차장 바로 앞에 수봉정사가 있다.
[변천]
수봉정사는 1936년 문시채(文時采) 등 문영박의 자제들이 건립하여 지금까지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형태]
수봉정사는 남평 문씨 본리 세거지 중앙 전면에 위치하여 마을로 들어서서 가장 먼저 만나는 건물이다. 대문채와 본채인 수봉정사가 동일축 선상(同一軸線上)에 배치되어 있다. 대문채는 정면 3칸, 측면 1칸 규모의 홑처마 맞배지붕 건물로 산형 대문(山形大門)이다. 대문의 좌우에 고방과 방이 하나씩 설치되어 있다. 수봉정사는 정면 6칸, 측면 2칸 규모의 겹처마 팔작지붕으로 일자형 건물이다. 평면은 중앙에 2칸 대청을 중심으로 왼쪽에 2칸, 오른쪽에 1칸의 온돌방을 둔 중당 협실형(中堂挾室形)이다. 중앙 5칸 전후에는 반 칸 규모의 툇간을 두었으며 왼쪽에는 쪽마루, 오른쪽에는 통간(通間)을 두었다. 오른 칸 마루는 전후로 단(段)을 달리하였는데, 후면 칸에는 단을 조금 높이고 주위에 난간을 설치하였다. 전체적으로 마루가 발달된 구조이다. 미닫이로 방이 4칸 나뉘어 있으나, 방과 방 사이의 문을 필요에 따라 개방할 수 있도록 하여 전체를 하나의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다.
[현황]
수봉정사는 현재 남평 문씨 본리 세거지를 찾는 손님을 맞을 때나 문중과 공사 간의 모임을 갖는 건물로 활용되고 있다. 수봉정사에 유창환(兪昌煥)이 쓴 수백당(守白堂) 등의 현판과 개항기 문장가 창강(滄江) 김택영(金擇榮)의 글씨 판각이 소장되어 있다. 현판 수백당을 따서 수봉정사를 달리 수백당이라 부르기도 한다.
[의의와 평가]
수봉정사는 광거당(廣居堂), 인수 문고(仁壽文庫)와 함께 대구광역시 민속 문화재 제3호로 지정된 남평 문씨 본리 세거지의 대표적인 건물이다. 1970년 인수 문고가 세워지기 전까지 다양한 전적류를 수장하여 당대 많은 문인들이 찾았고, 지금도 남평 문씨 본리 세거지를 방문하는 손님의 접객과 사회생활을 수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