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훤당 김굉필 선생 불천위 제사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81600
한자 寒暄堂 金宏弼 先生 不遷位 祭祀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의례/제
지역 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읍 지리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정재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불천위 제사
의례 시기/일시 음력 10월 1일
신당/신체 사당 신주

[정의]

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읍 지 1리에서 행하는 김굉필 선생의 불천위 제사.

[개설]

한훤당(寒暄堂) 김굉필(金宏弼)[1454∼1504] 선생 불천위(不遷位) 제사는 매년 음력 10월 1일에 현풍읍 지 1리 못골 종택 광제헌(光霽軒)에서 지내는 추모 제사이다. 기제사는 보통 4대조까지 신위를 모시고 제사를 지낸다. 그런데 4대 봉사가 끝난 뒤에도 신위를 없애지 않고 계속 기제사를 지내는 의례를 불천위 제사라고 한다. 한훤당 부인 제사[음력 8월 22일]도 불천위로 지내고 있다.

[연원 및 변천]

불천위는 나라에 큰 공훈을 남기고 죽은 사람의 신주는 4대 봉사가 지난 뒤에도 묻지 않고 사당(祠堂)에 영구히 두면서 제사를 지내는 것이 허락된 신위(神位)이다. 불천위에는 임금이 직접 예조에 명함으로써 추대되는 국불천위(國不遷位)와 지역 사회로부터 천거를 받는 향불천위(鄕不遷位)가 있으며, 해당 가문을 중심으로 자손들이 임의적으로 불천위를 모시는 사불천위(私不遷位)도 있다. 이와 같은 불천위 추대는 조선 초기만 하더라도 공신을 중심으로 제도적 차원에서 추대되었으나, 후대로 갈수록 가문의 현조(顯祖)에 대해 임의로 추대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그 이유는 조선 중·후기에 이르러 성리학적 이념이 확산됨에 따라 가문 의식이 팽배해졌기 때문이다.

이러한 불천위 제사는 쉽게 말해 기제사다. 다만 제사의 대상이 4대를 넘긴 조상, 곧 불천위로 추대 받은 인물이라는 점이 다를 뿐이다. 그리고 ‘불천위'라는 상징성으로 인해 제물의 종류와 규모가 웅장하고, 또 불천위 인물 대부분이 해당 문중의 중시조[派祖]인 까닭에 파에 소속된 성원들이 모두 제관으로 참여하는 것도 일반 기제사와 차별화되는 점이다. 학문적으로 큰 업적을 남긴 인물의 경우에는 선대 조상들의 학문적 인연에 의해 참사(參祀)가 이루어지기도 하는데, 이런 점에서 불천위 제사는 혈족의 범위를 뛰어넘은 그야말로 ‘대외적 행사’라고 할 수 있다.

한훤당 김굉필의 불천위가 언제 결정되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다만 1615년(광해군 7) 4월에 현풍 현감 허길(許佶)의 감독 하에 불천위 사당이 준공되었다는 기록으로 보아 적어도 1615년에 불천위 제사가 봉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한훤당 김굉필의 불천위는 신주를 안치하는 감실을 나라에서 만들어 하사한 것으로 보아 '국불천위'였음을 알 수 있다. 이 감실은 오래전 도난당했고, 지금의 감실은 그 후 다시 만든 것이다.

[신당/신체의 형태]

한훤당 종가 사당의 신주 위치는 여느 종가와 다르다. 보통 불천위를 가장 왼쪽, 즉 서쪽에 모시지만 이 사당은 불천위를 가운데 정면에 안치하고 있고, 4대조 신주는 불천위 신주 앞쪽 좌우에 안치하고 있다.

[절차]

한훤당 김굉필 선생의 불천위 제사를 지내기 하루 전날인 음력 9월 30일이면 입제일에 맞춰 문중 후손들이 광제헌에 속속 도착한다. 제사에는 보통 50여 명이 참석한다. 후손들은 먼저 종가 안채에 들러 종손께 인사를 드린다. 이는 종손에 대한 예의이다. 불천위 제사에 앞서 참례자들이 광제헌에 모여서 종중 회의를 갖는다. 불천위 제사는 크게 출주와 진설을 포함하는 식전 의례와 제례 집전으로 구분된다. 제례의 순서는 강신례, 참신례, 초헌례, 아헌례, 종헌례, 유식례, 합문례, 계문례, 진다례 순이다.

진다례가 끝나면 ‘사신(辭神)’이라 하여 영혼을 전송하는 의식을 행한다. 그 후 집사자가 숟가락과 젓가락을 내려 시접에 얹고 밥뚜껑을 덮은 다음 참제자 모두 두 번 절하는데, 이것이 철상 의식이다. 제사를 마치면 축과 지방을 태운 후 신주를 모시고 다시 사당으로 나아가 신주를 감실에 안치하는 납주(納主) 의식을 행한다. 이러한 과정으로 2시간 내외의 불천위 제사는 끝이 난다.

[부대 행사]

한훤당 김굉필 선생 불천위 제사 참제자들은 제복을 입은 채로 광제헌 제청에 다시 모여 서로 인사를 나눈다. 서울이나 멀리에서 오신 종친들은 광제헌과 안채에 잠자리를 정하고, 나머지는 귀가한다. 불천위가 끝나면 음복의 의미로서 참제자 모두에게 제사에 쓴 음식을 봉지에 담아 나누어 준다. 제사의 제주로 쓰는 가양주인 ‘스무주’와 '모시잎 절편', '장미화전' 등이 유명하다.

[현황]

한훤당 김굉필 선생 불천위 제사 외에도 달성군 지역에서 불천위를 지내는 문중은 '지리 못골 마을서흥 김씨 문중'을 비롯하여 청백리곽안방(郭安邦)[?~1480] 선생의 '대 1리 소례 마을현풍 곽씨 문중', 박팽년(朴彭年)[1417~1456] 선생의 '묘리 묘골 마을순천 박씨 문중', 이인좌(李麟佐)의 난을 진압하여 문무 삼등 공신이 된 이익필(李益馝)[1674~1751] 선생의 '하빈면 하산리전의 이씨 문중' 등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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