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00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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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盆地 集中分析, 大邱- 山 |
분야 | 지리/자연 지리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
지역 | 대구광역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주연 |
[정의]
대구광역시를 둘러싸고 있어 시민들이 즐겨 찾는 산.
[개설]
대구광역시를 대표하는 산으로는 흔히 팔공산과 비슬산을 들 수 있으나 분지의 도시답게 더욱 많은 산들이 도심과 인접한 채 도시를 이루고 있다. 여기에서는 대구광역시의 인구의 도시 집중이 심화됨에도 불구하고 도심 속 자연 요소로 남아 있는 도심형 산 위주로 살펴보고자 한다. 도시가 발달할수록 가치가 증대되는 산들을 살펴봄으로써 대구 시민들의 휴식처를 가늠하여 볼 수 있다.
[분지의 도시]
흔히 대구광역시를 무더운 분지 지형이라 지칭하는 경우가 많다. 대구는 구릉지와 평지, 강이 골고루 있어 완전한 분지라고는 할 수 없으나 광역도시 가운데 지역의 경계로서 산의 비중이 매우 많은 것이 사실이다. 특히 남부 산지, 북부 산지, 중앙부와 서남부 저지(低地)로 이루어져 있으며, 중앙부의 일부 지대는 두리봉(斗里峰)[215m]·모봉(母峰)[151m]·형제봉(兄弟峰)[195m] 등의 구릉성 산지로 형성되어 있다. 서쪽의 일부 지대도 두류산(頭流山)[131m]·와룡산(臥龍山)[300m]·궁산(弓山)[253m] 등의 구릉성 산지로 형성되어 있다.
이에 비하여 북쪽과 북동쪽은 함지산(函芝山)[287.7m]·도덕산(道德山)[660.8m]·응해산(鷹蟹山)[526m]·응봉(鷹峰)[456m]·문암산(門巖山)[431.4m]·능천산(綾泉山)[369m] 등으로 이어진 이른바 환상 산맥의 일부가 외연 경계 지대를 형성하고, 배후에는 화강암의 팔공산지[초례봉-환성산-인봉-팔공산[1,193m]-가산]가 발달하여 있다. 남쪽과 남동쪽은 대덕산(大德山)[546m]·앞산[660.3m]·산성산(山城山)[650m] 등의 앞산산괴, 법이산(法伊山)[348.5m]·용지봉(龍池峰)[629m]·대덕산[599.5m] 등의 용지산괴, 지산[231m]·무학산[203m]·두리봉[210m] 등의 낮은 구릉지로 둘러싸여 있고, 배후에는 화산암과 화강암으로 구성된 비슬산(琵瑟山)[1,083m]과 최정산(最頂山)[880m] 등이 솟아 있다. 서쪽의 북부와 북서쪽에서는 와룡산[295m]·잠산[198.5m] 등의 구릉지가 발달하여 있다. 특히 시역의 북쪽, 북동쪽, 남쪽, 남동쪽, 북서쪽 일부는 산지와 구릉지로 둘러싸여 있다.
[대구의 허파, 앞산]
앞산은 비슬산의 맥을 따라 그 준령이 대구 도심 앞까지 이어진다. 이에 따라, 앞산공원은 도심에서 4.5㎞ 이내에 있어 시민들이 접근하기 쉽다. 도심을 바라보고 있는 앞산은 깊은 계곡이 많아 자연경관이 수려하고 산림이 울창하며, 심신 수련과 체력 단련에 좋다. 대구의 앞쪽에 있는 산이라는 뜻으로 불리던 것이 ‘앞산’이라는 고유명사로 굳어졌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앞산은 비슬산 또는 대덕산이라고도 불리고 있으나 1832년에 편찬된 『대구읍지』에 의하면 ‘성불산’이라 표기되어 있다.
대구광역시의 남쪽에 있는 앞산공원은 주봉인 앞산정상[660.3m]과 주변의 산성산[653.4m] 및 대덕산[583.5m]을 중심으로 1,677.2㏊ 면적에 도시자연공원[1,318.6㏊]과 근린공원[358.5㏊]으로 나뉘어 있다. 시민들의 접근성이 좋고, 케이블카와 다양한 산책로, 체육시설, 사찰, 음수대 등이 모여 있어 연평균 이용객 1000만 명이 넘는 도시근교 자연공원이다. 왕건이 숨었던 곳으로 유명한 왕굴, 시민들이 사랑하는 걷기코스인 앞산자락길, 골안골 등에서 지하수가 흘러들던 앞산빨래터공원 등이 있다.
앞산에는 113과 571종의 식물들이 자생하고 천연림에 가까운 참나무숲 10만여 평[약 330,512㎡]과 잣나무단지 24㏊ 5만여 본이 울창하게 자라고 있고, 연중 1600여만 명이 즐겨 찾는 천혜의 산림욕장 및 산림문화휴양공간이 제공된다. 앞산공원 일대는 대구광역시 남구 대명동과 봉덕동, 수성구 파동, 달서구 송현동, 상인동, 도원동에 분포하며 도시자연공원 구역 13.18㎢와 근린공원 3.58㎢를 포함한 총 16.77㎢의 넓이이다. 앞산공원 일대에는 크고 작은 8개 골짜기, 즉 용두골, 고산골, 강당골, 큰골, 안지랑골, 골안골, 매자골, 달비골 등 주요 골짜기를 중심으로 등산로가 이어져 있고 각종 체육시설 등이 구비되어 있다. 따라서 이러한 골짜기를 중심으로 6개의 등산 코스가 발달되어 있다.
제1코스는 수성구 파동 일원으로 용두골을 포함하며 산성산 정상, 토굴암 등이 있다. 제2코스는 남구 봉덕동 일원으로 고산골과 강당골, 큰골을 포함하며 수덕사, 성불사, 굴암사, 법장사 및 은적사 등의 사찰과 앞산공원관리사무소 등이 있다. 제3코스는 남구 대명동 일원으로 안지랑골을 포함하며 대덕사, 안일사, 보문사 등의 사찰과 케이블카, 앞산정상이 위치한다. 제4코스는 달서구 송현동 일원으로 골안골과 매자골을 포함하며 성불사, 황룡사 등의 사찰과 궁도장, 승마장, 캠핑장 등의 시설이 있다. 제5코스는 달서구 상인동 일원으로 골짜기는 없으나 대덕산 정상과 임휴사, 원기사, 청소년수련원 등이 있다. 마지막 제6코스는 달서구 도원동 일원으로 달비골을 포함하며 시민들의 체육시설과 쉼터가 있는 평안동산 등이 있다.
앞산공원에는 산성산으로 이어지는 산책로와 대덕산과 연계된 산책로가 있다. 2㎞ 코스와 4㎞ 코스로 나뉘어져 있기에 취향이나 대구 날씨에 따라 다르게 선택하여 이용할 수 있다. 힘들게 산을 오를 필요 없이 앞산을 즐길 수 있는 방법도 있다. 앞산에서 케이블카를 타면 앞산전망대에 오를 수 있어 편안하게 대구의 시가지를 내려다보며 앞산을 즐길 수 있다. 도심지역에서 가장 가까운 앞산자락길은 산 정상을 향하여 조성된 기존 숲길과 달리 등고선을 따라 2~3부 능선에 조성되어 완만한 경사를 유지하기 때문에 초보자나 가족 단위 산행객 등 누구나 쉽게 이용할 수 있어 인기가 많은 코스다. 앞산자락길은 고산골에서 출발, 달서구 평안동산을 돌아 청소년수련원으로 내려오는 길이 15㎞의 숲길이다. 앞산자락길에는 고산골 입구에서 운영되고 있는 숲유치원, 공룡 발자국 흔적과 함께 1㎞에 이르는 맨발산책로가 잘 조성되어 있다. 큰골 지역은 후삼국시대 공산전투에서 패한 왕건이 피신한 은적사와 함께 낙동강 승전기념관 등 다양한 문화를 체험할 수 있다. 또 큰골에서 안지랑골~달비골~가창[용계교]~상동교의 약 22㎞로 조성된 앞산둘레길은 생태·역사·문화·자연체험 등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는 최적의 힐링로드로 평가 받고 있다.
[노을이 아름다운 곳, 침산]
침산은 높이가 해발 119.5m에 불과한 산이지만 16세기의 고전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버젓이 등재되어 있을 정도로 이름나 있다. 1997년 12월 침산1동 장년회가 세워 놓은 ‘침산의 유래’에 따르면 “달구벌의 북쪽에 자리 잡은 대구 문화의 발상지인 침산은 다른 말로 ‘수구(水溝)막이산’이라고도 하였고 산의 모양이 소가 누워 있는 것 같다 하여 ‘와우산(臥牛山)’, 또는 봉우리가 다섯 개라 하여 ‘오봉산(五峰山)’이라고도 부른다. 그 옛날 침산 앞에는 희고 고운 모래벌이 넓게 펴져 있어 흰 모래벌판, 즉 백사벌(白砂伐) 또는 백사부리라 하여 빨래하는 아낙들로 발 디딜 틈도 없었다고 한다. 조선시대 향토 출신의 문신인 서거정(徐居正)이 대구의 아름다운 열 곳을 골라 노래할 때 침산의 저녁노을을 두고 침산만조(砧山晩照)라고 한 유서 깊은 곳이다. 1965년 2월 2일 공원[88,052평]으로 지정된 후 1988년 5월 14일 공원조성기본계획이 결정되어 기반시설이 완료되었고 각종 간이체육시설과 편의시설, 자연학습장, 인공폭포, 이북5도민을 위한 망배단 등의 시설이 조성된 침산공원은 대구 시민의 휴식공간으로서 거듭나고 있는 선조들의 얼이 배인 공원이다. 잘 가꾸어 자손만대 값진 유산으로 물려주자”라고 하여 그 연혁이 결코 간단치 않음을 알 수 있다.
침산의 뜻은 물가에서 빨래하는 아낙네가 많아서 빨래돌 침(砧), 혹은 다듬돌 침(砧)이라 한다고 하며, 일설에는 방아 모양이니 방망이 모양이니 하여 ‘침산’이라고 한다고도 알려져 있다. 침산은 돌림병과 악귀로부터 주민을 보호하기 위해 디딜방아 모양으로 만든 여제단을 설치하여 ‘방아산’으로도 불렸다.
침산 일대 구릉지는 선사시대 금호와 신천이 만들어 낸 기름진 충적토가 농사짓기에 알맞고 맑은 강에는 물고기가 많이 살아 달구벌에서 가장 이른 시기에 큰 취락이 장기적으로 형성된 곳이다. 침산은 서거정이 이미 노래한 대로 저녁 노을이 유독 멋진 곳이다. 대구광역시 북구청은 침산정에 ‘만조전망대’를 조성하여 화담산과 함지산에 이어 세 번째 전망대를 갖추게 되었다. 이로써 침산공원 오봉산 침산정에서 대구 시내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게 되었으며, 무엇보다 오봉산 정상에서 금호강 너머로 지는 노을 풍경을 즐길 수 있어 지역의 야간경관 명소로 거듭났다. 「대구십영」 중 제10경 침산만조[침산에서 바라보는 저녁놀]에 해당한다. 현재 침산공원에 새로 세워진 침산정 넓은 잔디밭 자연석에 서거정의 시가 새겨져 있다.
물은 굽이돌고 산은 끝났는데
침산 푸른 숲에 가을 빛 어리었네
어디서 해 늦은 방아소리
손의 가슴 찧는고
대구의 근대 역사를 말할 때 빠지지 않는 친일파 박중양[1874~1955]은 침산을 유독 좋아하였다. 박중양은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의 양자라 할 정도로 막강한 권력을 휘둘렀고, 늘 지팡이를 짚고 다녀서 ‘매국노 박작대기’라 불렸다. 대구읍성과 더불어 대구의 자긍심을 무너뜨리며 일제에 아부한 박중양은 광복 이후 친일파로 붙잡혔으나 곧 풀려나서는 대구 북구 침산동 오봉산 기슭에서 말년을 보냈다. 박중양은 작대기를 짚고 자주 침산에 올랐는데, 그 이유로 대구 시민들은 한동안 침산을 일컬어 ‘박 작대기 산’이라 부르기도 했다. 박중양의 친일 행각과 위세가 얼마나 대단하였는지 1909년 『대한매일신보』에는 박중양을 빗댄 「중양타령」이 실렸다.
봄이 봄이 아니고 볕이 좋은 계절이라 말 말아라.
통곡일세. 통곡일세. 수백 년을 높이 받들어 숭상하던 대구객사 어디 갔나.
애구(哀邱), 대구. 흥~
볕이 좋은 계절이라 말 말아라.
전무후무 배부르기 위한 수단으로 대구성곽과 오랜 연못을 순식간에 팔아먹네.
애구, 대구. 흥~
갖은 수단을 써서라도 부유함을 누리며 한 생애를 살아온 박중양이 말년에 침산을 선택하였다는 데서 박중양의 인격과 무관하게 침산이 얼마나 아름다운 곳인지 방증할 수 있다. 침산은 한동안 방치되어 아까시나무만 듬성듬성할 만큼 헐벗었던 적이 있었으나, 주민들의 관심과 관계기관의 지원으로 이제 다시 푸른 산, 붉은 노을을 간직한 침산으로 돌아오고 있다.
[대구에 누운 용, 와룡산]
대구광역시 성서지구 북쪽에 있는 와룡산[299.6m]은 서구와 달서구, 달성군의 경계에 있다. 『경상도읍지』에는 와룡산을 ‘성산봉’으로 기록하고 있는데, 성산봉은 서쪽의 성이라는 뜻으로 오늘날 성서의 지명이 되었다.
와룡산의 명칭 유래는 여러 가지 이야기로 전한다. 우선 『경상도읍지』에 따르면 산 아래의 옥연(玉淵)에서 용이 노닐다가 승천하려던 순간, 지나던 아녀자가 놀라 소리치는 바람에 승천하지 못하고 떨어져 산이 되었다는 설이 있다. 다른 이야기에 따르면 ‘와룡산’이란 이름은 산의 모양이 용과 흡사하고 용의 머리는 서북단에, 꼬리는 북동단에 두고 몸체는 양쪽으로 굽혀 누워 있는 것과 비슷하다는 데서 나왔다고 한다. 또한 임진왜란 당시 중국의 이여송이 원병을 왔을 때, 우리나라에 훌륭한 명장과 인재가 많이 날 것을 두려워하여 이름난 명산의 맥(脈)을 잘랐다고 하는데, 와룡산의 맥을 자르니 검붉은 피가 쏟아져 나왔다고 한다. 또한 대구의 분지가 형성될 때 팔공산이나 비슬산 등 주위의 모든 산은 지세가 대구 분지를 향하여 뻗어 있으나 오직 와룡산만은 용이 등을 대구로 향하여 돌아누워 있는 형상을 보이므로 ‘역산(逆山)’이라 불리기도 한다.
명칭에 관한 다양한 설은 대체로 용이 누운 모습처럼 생겼다는 이야기로 귀결된다. 와룡산은 1991년 전국을 떠들썩하게 하였던 ‘대구 성서 개구리 소년 실종 사건’의 장소이기도 하다. 5명의 초등학생이 도롱뇽 알을 줍겠다고 집을 나섰다가 실종된 사건에서 알 수 있듯이 주거지와 인접한 경사가 낮은 산이다.
와룡산 정상은 시가지와 인접하여 있어 산길을 걸으면서 서구의 전경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봄부터 진달래꽃과 벚꽃, 영산홍 군락지가 등산로 사이사이로 펼쳐져 등산객들이 애용하는 산이기도 하다. 와룡산 전망대가 있는 상리봉 정상으로 가는 길은 모두 다섯 코스이다. 서구 소망모자원에서 상리봉으로 향하는 1번 코스가 길이 0.8㎞로 30여 분이면 정상에 도착할 수 있어 인기가 있다. 와룡산 정상의 전망대에서 해마다 1월 1일이면 해맞이 행사를 개최하기 때문에 전망대까지 가는 길 곳곳에는 ‘해맞이공원’이라는 팻말이 붙어 있다. 좀 더 본격적인 산행을 즐기는 이들은 전망대에서부터 손자봉과 할아버지봉을 거쳐 벚나무군락지로 유명한 용미봉과 진달래 및 영산홍 군락지를 2시간 동안 모두 둘러보곤 한다. 새방골마을에서 상리봉으로 향하는 코스는 자동차가 오르내릴 정도로 등산로가 넓기 때문에 산악자전거 코스로도 유명하다.
와룡산은 또한 팔달교 방향의 신천과 금호강을 따라 굽이치는 신천대로가 조명에 비쳐 야경이 아름답게 보이는 장소로 유명하다. 봄가을에 또 하나의 볼거리는 안개다. 일교차로 인한 안개가 자주 발생하므로 안개 자욱한 와룡산 전망대에서 일출을 포착하는 장면은 그야말로 인생 사진을 탄생하게 한다.
와룡산은 자연생태체험 숲으로 거듭나고 있다. 대구광역시 서구청과 달서구청은 와룡산에 힐링 숲길, 숲 체험시설 등을 조성한다. 와룡산은 아이들의 체험학습공간과 산림휴양 기능이 보강되어 주민의 휴식 공간은 물론 아이들에게 자연을 학습하는 체험의 장으로도 거듭나게 된다. 또한 5㎞의 둘레길이 조성된다. 신당동에서 이곡동을 지나 용산동을 연결하는 경관숲길, 백색소음길, 수(樹)텐길, 테르펜[피톤치드]길, 음이온 흙길 5구간이다. 기존의 등산로보다 완만하게 조성되는 자락길은 많은 시민들이 와룡산을 찾도록 유도할 전망이다.
[날아와 생긴, 비산]
대구역에서 서대구IC 방향으로 가다가 만날 수 있는 대구광역시 서구 비산동은 거의 대부분이 언덕배기에 있는 산동네이다. 따라서 동네 이름에도 산 지명이 남아 있는데, 바로 날뫼산이다. 『대구 서구 향토사』에 따르면 ‘비산동(飛山洞)’이란 지명은 산이 날아온 전설에서 유래하였기에 순우리말로 ‘날뫼’라고도 한다. 원래는 넓은 평야였으나 어느 봄날 새댁이 달서천에 나와 빨래를 하던 중 그윽한 음악소리에 하늘을 보니 서쪽에서 커다란 산이 둥둥 떠 날려와 지금의 비산동 일대에 내려앉았다는 것이다. 이를 현대식으로 해석하면 서쪽에서 특정 정치세력이 와서 주둔하였다고도 이해할 수 있다. 그렇게 날아왔다는 산이 지금의 비산1동 일대 비봉초등학교가 들어선 산이다. 비산동 중의 상당 지역은 달동네라 불리기도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따라서 대부분 아파트가 아닌 빽빽한 주택가로 형성되어 있으며 비산동의 ‘날뫼’를 기점으로 두류산까지 커다란 언덕으로 이어져 있다.
비산동은 1608년(선조 41), 해주오씨(海州吳氏), 인동장씨(仁同張氏), 경주최씨(慶州崔氏) 등이 정착하여 마을을 개척하였다는 뜻에서 ‘오장최동’이라고도 불렸다고 한다.
대구광역시 서구에는 6·25전쟁 전까지 기천왕, 중천왕, 말천왕을 모신 사당이 있었다고 한다. 기천왕은 서구 비산1동의 원고개 시장 부근에 있었고, 중천왕은 비산1동 1번지 옛 인동촌 시장 부근에 있었고, 말천왕은 비산2동, 비산3동의 옛 삼성예식장 부근에 있었다고 한다. 사당 앞에서 제를 지내면 이어서 비산농악 한마당을 놀았다고 한다. 그러나 1965년 경 도시개발을 하면서 이 천왕당들은 모두 철거되어 버렸다고 한다. 1988년에 대구시에서는 천왕당 발굴 작업을 하여, 1989 전국민속경연대회에서 대상을 차지하였고, 1989년 6월 15일에 대구광역시 무형문화재 제4호 천왕메기로 지정되었다.
산업화 시기를 거치면서 대구 서구 비산동은 염색공단이 경제의 축으로 작용하였는데, 대구 경제에 기여한 바 또한 크다. 그러나 현재 비산동의 노령화가 심하여져 해마다 인구가 1만 명씩 줄어드는 추세다. 비산2동과 비산3동의 경우 노인 인구가 24%에 달하여 초고령화 지역으로 분류된다. 비산7동은 공단지대이며 대구북부시외버스터미널, 이마트 트레이더스 등이 있다.
비산동 일대에서 유래된 날뫼북춤은 기능보유자 김수배가 1984년 7월 25일자로 대구시 지정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옷차림은 모두 흰바지저고리에 감색 쾌자를 입고 머리에 흰 띠를 두르며 연행과정은 정적궁기, 자반득이[반직굿], 엎어빼기, 다드래기, 허허굿, 모듬굿, 살풀이굿, 덧배기춤으로 구성되어 있다. 1990년 5월 29일 전주대사습놀이보존회 농악부 참방상을 받았으며 1992년 9월 25일 문화부장관상 등을 수상하였다. 대구광역시 자매결연 도시인 중국 칭다오와 일본 히로시마 등에서 공연활동을 하는 등 연간 1회의 해외공연과 70회 이상의 국내공연을 하고 있다. 대구광역시 초, 중, 고등학교 20개교에 비산농악과 날뫼북춤을 전수하고 있다.
[산의 도시, 대구]
대구 시민들은 도심 어디에서나 산을 바라볼 수 있기 때문에 비교적 산과 친숙하고 산악 동호회 또한 발달되어 있다. 더군다나 여가시간과 소득 증대는 건강에 대한 관심과 자연 향유에 대한 폭발적인 수요를 가져오고 있다. 도시의 산지들에 시민들이 거는 기대가 클 수밖에 없는 이유다. 대구광역시를 둘러싼 산들은 주로 가족, 친구와 함께 또는 혼자서, 건강 유지 및 운동, 산책을 위하여 방문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공원 이용은 주로 주말 오전 9시에서 오후 6시 사이에, 주 1~2회 빈도로 2~4시간 정도 이용하는 것으로 평균을 낼 수 있다. 대구 시민들이 산을 즐겨 찾는 계절은 크게 차이가 없는데, 주말이면 산을 찾는 것이 일상에 흡수되었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