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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2813
한자 尹瑛燮
영어공식명칭 Yoon Yeongseop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대구광역시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김일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활동 시기/일시 1906년 - 윤영섭 대구광학회 설립
활동 시기/일시 1907년 - 윤영섭 금연상채회 평의원 참여
활동지 대구 - 대구광역시
성격 민족운동가
성별 남성
대표 경력 금연상채회 평의원

[정의]

개항기 대구에서 활동한 민족운동가.

[개설]

윤영섭(尹瑛燮)[?~?]은 1907년 대구에서 시작된 국채보상운동(國債報償運動)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

[활동 사항]

윤영섭은 일찍이 주사(主事)를 지냈으며, 1906년에는 대구 사립중학교 교감을 역임하였다. 1906년 8월 무렵 이일우(李一雨)·최대림(崔大林)·윤필오(尹弼五)·이종면(李宗勉) 등과 함께 민지 개발과 교육 진흥을 목표로 하는 대구광학회(大邱廣學會)를 설립하였다. 또한 윤필오·양재기(梁在淇) 등과 함께 민의소 형태의 시청(市廳)을 설립하였다.

1907년 1월 29일 대구 광문사(廣文社) 내 문회(文會)는 특별총회를 열어 대동광문회(大東廣文會)로 명칭을 변경하고 국채보상운동을 결의하였다. 1907년 2월 17일 광문사 사장이자 대동광문회 부회장이던 김광제(金光濟), 광문사 부사장 서상돈(徐相敦), 대동광문회장 박해령(朴海齡) 등을 중심으로 국채보상운동을 위한 조직으로 금연상채회(禁煙償債會)와 대구민의소(大邱民議所)가 설립될 때 윤영섭금연상채회 평의원으로 참가하였다.

금연상채회수창사에 국채지원금수합사무소를 설치하였고, 2월 21일 대구민의소 주최로 서문 밖 북후정에서 국채보상을 위한 군민대회를 개최하였다. 이후 「국채일천삼백만환보상취지서」가 『제국신문』과 『대한매일신보』에 실리면서 국채보상운동은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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