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297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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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鄭瓊周 |
영어공식명칭 | Jung Gyeongju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대구광역시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임삼조 |
출생 시기/일시 | 1866년 - 정경주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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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07년 2월 23일 - 정경주 남일동 패물폐지부인회 설립 |
몰년 시기/일시 | 1945년 - 정경주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2006년 2월 28일 -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에서 국채보상운동 여성 기념비 건립 |
거주|이주지 | 남일동 - 대구광역시 중구 남일동 |
활동지 | 남일동 패물폐지부인회 - 대구광역시 중구 중앙대로 394[남일동 109-2] |
성격 | 민족운동가 |
성별 | 여성 |
대표 경력 | 남일동 패물폐지부인회 회원 |
[정의]
개항기 대구에서 활동한 여성 민족운동가.
[개설]
정경주(鄭瓊周)[1866~1945]는 지금의 대구광역시 중구 남일동에서 패물폐지부인회(佩物廢止婦人會)를 결성하여 국채보상운동이 전국으로 확산하는 데 기여하였다.
[가계]
정경주의 남편은 서병규이며, 아들은 서학균·서석균·서덕균이다.
[활동 사항]
1907년 1월 29일 대구 광문사(廣文社) 내 문회(文會)는 특별총회를 열어 대동광문회(大東廣文會)로 명칭을 변경한 뒤 국채보상운동을 결의하였고, 2월 21일에는 서문 밖 북후정(北堠亭)에서 대구군민대회가 개최되었다. 당시 남일동에 거주하던 정경주는 국채보상운동에 동참하기로 결의하고 대구군민대회 개최 이틀 후인 2월 23일 며느리 정말경[서학균의 아내]·최실경[서석균의 아내]·이덕수[서덕균의 아내]를 비롯하여 서채봉(徐彩鳳)[정운갑의 어머니]·김달준(金達俊)[정운화의 아내]·김수원의 아내 배씨와 함께 남일동 패물폐지부인회를 결성하였다. 남일동 패물폐지부인회는 은장도와 은가락지 등 부인들이 가지고 있던 패물들을 기부하여 국채를 갚고 경제 주권을 지키려는 운동을 전개하였다.
남일동 패물폐지부인회는 의연금 위주로 이루어지던 초기 국채보상운동의 기금 확보 방법을 한 단계 높이는 중심적 역할을 하였으며, 여성 주도의 국채보상운동 단체들이 만들어져 각 지역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는 도화선이 되었다. 정경주는 1945년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에서는 2006년 2월 28일 ‘국채보상운동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하여 정경주를 비롯한 대구 남일동 패물폐지부인회 회원들의 활동을 담은 국채보상운동 여성 기념비를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에 건립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