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214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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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大邱- 休息處 東村遊園地 |
영어공식명칭 | Resting Place for Daegu People, Dongchon Amusement Park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
지역 | 대구광역시 동구 |
시대 | 근대/근대,현대/현대 |
집필자 | 김일수 |
[정의]
1920년대 대구광역시 동구 동촌 일대에 조성된 유원지로 대구광역시의 대표적 휴양지.
[동촌유원지 개발 계획]
1920년대 전반기에 처음으로 금호강 연안의 동촌에 유원지 조성 계획이 수립되었다. 그것은 1922년 8월 총독부 토목부원 우에다 마사요시와 오쿠이 료타로 등 두 명이 작성하여 대구부[지금 대구광역시청]에 제출한 「대구부 도시계획 개요」에 잘 나타나 있다. 이것은 대구부가 발주한 일종의 도시계획에 대한 용역 결과 보고서이다. 그 가운데 동촌유원지와 관련해서는 시가로부터 동쪽 약 10리[4㎞]의 거리에 위치한 금호강 연안의 동촌에 교외공원을 축조하고, 여객의 수송을 목적으로 궤도연장 2.9마일[4.7㎞] 단선의 교외전차를 설치하여 시속 12마일의 운전속도로 운행한다는 계획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동촌유원지 조성은 이후에 추진되나 여객 수송에 있어 전차 설치는 무산되고, 대신 부영버스로 대체되었다.
1927년 무렵 금호강 연안 동촌에 홍수 방지용 제방이 축조되었다. 그즈음 동촌에 유원지가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동촌유원지는 봄에서부터 여름 동안 이용하는 유원지로 또 납량지로 많은 사람이 찾는 유명지였다. 1929년 7월 대구[지금 대구광역시]에서 부영버스가 오랜 준비 끝에 운행을 개시하였다. 부영버스는 대구부내 주요 가로에 30인승 3개, 24인승 20대를 배차하여 운행하였다. 그 뒤 이용자가 증가하고 교외와의 교통 연락이 필요하게 되자 동촌 노선과 화원 노선을 신설하여 운영하였다. 1930년 6월 21일에 동촌노선이 개통되었고, 대구에서 편도 5.8㎞에 해당하였다. 동촌유원지는 대구부에서 화원유원지와 함께 부민의 ‘바람 쏘일 곳으로’ 널리 알려져 있었는데, 대구부에서 가는 거리를 따져 보면, 동촌유원지는 10리인 반면 화원유원지는 30리 정도로 훨씬 멀었기에 교통비도 부영버스편이나 기차편을 이용하더라도 동촌유원지는 왕복 20전이면 충분한 반면 화원유원지는 부영버스로만 왕복 50전이 소용되었다. 이처럼 대구부민들은 거리나 비용 때문에라도 동촌유원지를 훨씬 더 선호하며 찾는 이유가 되었다. 이러한 동촌에 대해 시인 백기만은 잡지 『별건곤』을 통해 다음과 같은 글을 실었다.“동촌(東村), 부(府)의 동방 경주가도(慶州街道)를 가면 10리를 못 가서 있으니 금호강 유역으로 능금 소채(蔬菜)의 명산지(名産地)다. 근년(近年) 연안에 각 요리점 지점(料理店 支店)이 생기고 대선장(貸船場)이 설치되고 하야 나즐 밤에 있는 유탕배(遊蕩輩)들이 질겨 모여 드는 곳이다. 소규모의 한강(漢江)이라면 어떨는지. 그 외 동촌에는 좋은 율림(栗林)[밤나무 숲]이 있어 가을에 습률(拾栗)[밤을 줍는]하는 재미를 볼 수 있으니 각 학교의 가을 소풍지(秋期 遠足地)로도 정평이 나 있는 곳이다. 더구나 작년(去年)부터는 버스가 매일 수차례 왕복하게 된 까닭에 나날이 번창하여 가는 상태에 있다.”
[동촌유원지 제방 공사]
대구 교외의 유원지로 각광을 받던 동촌유원지는 1933년 여름 큰 홍수로 인해 물에 잠기는 피해를 입고 일시 사라질 위기를 맞기도 하였다. 곧 1934년 6월 무렵 금호강 연안 동촌에 제방을 보강하는 공사를 진행하면서, ‘대구의 대중 오락지인 동촌유원지’를 철폐하게 되었다. 대구부는 동해안 영일군 죽남면에서 발원하여 서남으로 흐르는 금호강이 동촌유원지를 만들어 주었지만, 그것으로 인해 동촌유원지를 비롯한 그 일대 1천 2백여 정보의 옥야가 물에 잠기기 일쑤였다. 이에 부당국은 40여 만원의 공사비로 하천을 개수하고 방천을 새로 축조할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그해 여름 대구에 큰비로 인해 동촌유원지 일대는 물나라로 바뀌어 무너진 집이 2호, 침수된 집이 58호에 이르는 피해를 입었다. 이에 1935년 6월 무렵 동촌유원지 일대 금호강안 주민들은 여름 장마철에 홍수가 지기 전에 관계 당국에 제방 공사의 완성을 촉구하는 활동을 펼쳤다. 그즈음 금호강 호안 공사 중 상류는 완성이 되었으나 하류는 여전히 시작도 못한 실정이었다. 그에 따라 주민들은 장마철에 동촌유원지가 있는 금호강 하류가 물에 잠길 것을 우려하여 주민 대표로 용야(龍野), 안전(安田) 등 두 사람을 선정하여 하류의 호안공사를 완성해 달라는 진정을 넣기 위해 부산 초량에 있는 총독부 토목출장소에 출장을 떠났다.
또한 조선인과 일본인이 포함된 동촌지역 유지들은 동촌유원지의 폐쇄가 장기화될 것을 우려하여 대구부청을 방문해 진정을 넣는 등 동촌유원지의 시급한 재개장을 적극 추진하였다. 이러한 노력이 수반된 뒤 동촌유원지는 다시 대구 교외의 주요 유원지로 개장될 수 있었다. 대구부영버스와 기차는 바깥 여행하기 좋은 계절에 많은 대구 사람들을 동촌유원지로 데려다주었다.
[한국 현대 동촌유원지의 공원화]
1950년대 경향신문에 실린 연재소설 「실락원의 별」에 동촌유원지의 풍광이 묘사되어 있다. “…영림은 차창에 기대여 오른편쪽 동촌유원지 일대에 흩어져 있는 유흥객과 욕객들을 내다보았다. 강에는 뽀오트 떼가 죽 끓듯 했다. 모터뽀오트가 물결을 가르기도 했다.” 이처럼 동촌유원지에는 바람 쐬기 좋은 계절엔 많은 유흥객이 넘쳐나는 곳이었다. 1963년 2월에 대구시는 동촌유원지를 공원으로 조성하기 위해 세부 예산과 세부 계획을 수립하였다. 그 내용은 동촌유원지 내에 수영장, 스케이트장 등을 비롯해서 실내경기장을 신설하고, 아동을 위한 어린이놀이터도 조성하고, 경북대학교를 미화하기 위해 조림계획도 포함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1965년 동촌유원지는 유원지로 지정되기에 이르렀다.
한편, 동촌유원지는 많은 인파가 찾는 명소로 거듭나면서 공중도덕, 바가지요금 등 행락 질서를 어지럽히는 행위들이 만연하기도 하였다. 대구에서 동촌유원지로 가는 좌석버스는 증편이 되지 않아 사람들이 짐짝 실리듯 콩나물시루처럼 태워졌고, 택시는 웃돈을 요구하며 바가지요금으로 사람들의 눈살을 찌뿌리게 했다. 또한 동촌유원지에 설치된 가교가 영업허가를 받지 않고 불법적으로 유료 영업을 해 시민들의 불만을 사기도 했다.
이러한 사정에도 불구하고 동촌유원지에 몰려드는 인파는 더욱더 증가하는 추세였다. 1973년 7월 연휴에 동촌유원지에는 무려 1만 명의 시민들이 휴일을 즐기기 위해 나들이를 하였다. 동촌유원지 주변에는 추어탕 식당이 무려 30~40개가 영업하며 식도락을 즐겁게 하였다. 대구시는 1982년부터 동촌유원지 개발을 추진하였다. 1990년에는 1996년까지 공사비 2백억 중 30억을 투입하여 유원지 기반시설을 다질 계획을 추진하였다. 3천 1백 평의 영남제일관, 1만 4천 평의 사이클장, 2천 5백 평의 수영장을 포함하되 그밖에 도로기반 시설과 휴양시설을 갖추고, 14억 2천 5백만원을 들여 금호강변 기존 식당 지역에다 도로 1.2㎞ 하수본관 4백m 시설을 시공하였다. 이 시설을 모두 1990년 9월까지 준공할 계획으로 추진하였다. 또한 1996년 완공 목표인 하천정비 및 고수부지 공원화 사업도 계획대로 진척되어 하천 정비의 경우 신천은 1990년 내에, 1991년 상반기 중에 고수부지 공원화 시설, 금호강은 1992년까지 마무리할 계획이었다. 그리고 1993년에 금호강과 신천의 수질개선을 위한 오수관로 공사와 신천하수처리장 건설도 끝낼 계획이었다. 이 시설들이 마무리되면 동촌유원지의 공원화사업이 마무리되어 도심 속의 운동 및 휴식공간이 될 것으로 기대되었다.
1990년 5월 무렵 마무리된 동촌유원지의 공원화 사업을 보면, 금호강 계통 중에서도 동촌지구[아양교~제2아양교]의 하천기반시설이 완료되었다. 또 강바닥을 준설하여 조정 경기 연습이 가능한 2㎞의 공간을 확보했고, 강 수욕과 모래 뜸질을 즐길 수 있는 1천 5백㎡의 자연 모래사장이 조성되었다. 그리고 아양교 상류에 4백 50m의 낚시터와 보트장[보트 4백 40대, 유람선 10대]시설, 케이블카, 상류에 1천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야외무대 1개소, 기존 유원지와 연결되는 2.5㎞의 산책로, 아양교에서 통천사 하단을 경유하는 제방도로 3백m 등이 개설되었다. 이에 동촌유원지는 공원화사업을 거치면서 많은 인파가 모여드는 명소로 자리 잡았다.그러나 동촌유원지는 1990년대 중반부터 행락객들이 버린 쓰레기로 몸살을 앓기 시작하면서 ‘금호강 살리기’운동이 전개되기에 이르렀다. 1965년 유원지로 지정된 이래 43만 1천여 평[1,424,793㎡]의 동촌유원지는 빠르게 이용객의 외면으로 운영을 중단하게 되었다. 그 뒤 대구시는 동촌유원지를 2002년 월드컵 대구경기에 대비해 국제적 휴식 공간으로 개발할 계획을 세우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