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8003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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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歷史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
지역 | 서울특별시 강남구 |
집필자 | 이우태 |
[정의]
선사 시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서울특별시 강남구 지역의 역사.
[개설]
강남구 지역은 서울특별시에서도 가장 개발이 진전된 곳이라서 선사 시대는 물론 전근대의 자취를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해방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농촌의 풍모를 지닌 도시 교외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던 지역이다. 근대 이전의 강남구의 역사는 강남구가 포함된 행정구역의 변천상을 파악하는 것이 위주가 된다.
[선사 시대]
강남구 지역은 지금은 도시화가 많이 진전되어 선사 시대의 유적이 남아 있는 것이 거의 없지만, 이전의 보고서나 기록들을 살펴보면 적지 않은 선사 시대의 유적이 분포하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강남구 지역의 대표적인 선사 시대 유물의 분포지로는 율현동, 압구정동, 개포동, 역삼동 등을 들 수 있다. 이 중 율현동에는 석기의 산포지가 보고된 바 있고 압구정동의 한강변인 옥곡(玉谷)마을에서는 돌도끼가 출토되었다고 하나, 아직 강남구 지역에서 확실한 신석기 시대의 유적이나 유물은 확인되지 않는다.
청동기 시대의 유적과 유물은 서울 지역을 대표할 만한 것들이 보고되고 있다. 우선 개포동 지역에서는 4기의 고인돌이 발견되었는데, 지금은 그 형태는 물론 원위치조차 확인할 수 없지만, 서울시내에서 발견되는 고인돌이 흔치 않은 상황에서 매우 의미 있는 유적이라 할 것이다. 역삼동 집자리 유적에서는 많은 양의 석기와 토기가 발견되어 서울 지역 청동기 시대의 생활상과 편년을 규명하는 데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고대]
청동기 시대를 지나면서 한반도의 남쪽에는 수많은 초기 국가들이 생겨났다. 강남구 지역이 포함된 서울 일대에 자리 잡은 백제도 처음에는 마한 연맹의 장인 목지국의 지배를 받았지만, 점차 힘을 키워 마한 세력을 모두 흡수 통일한 뒤 고대국가로 발전하였다.
그러나 475년 고구려가 백제 수도인 한성을 점령하면서 약 77년 동안 강남지역이 포함된 한강 하류일대를 지배하게 된다. 하지만 백제는 신라와 힘을 합쳐 551년 고구려로부터 한강 유역의 땅들을 모두 되찾게 되었다. 이로부터 2년 뒤 신라의 진흥왕은 백제가 차지한 한강 하류 지역을 공격하여 빼앗아 신주(新州)라는 주를 설치함으로써 이 지역은 신라의 영역에 편입되었다. 신주는 북한산주, 남천주, 한산주 등으로 이름이 바뀌다가 경덕왕대 이후에는 한주(漢州)로 확정되었다.
[고려 시대]
고려 시대의 강남구 지역은 주로 광주(廣州)의 관할 아래에 있었다. 강남구 지역이 속해 있던 한주는 940년(태조 23) 고려가 후삼국을 통일한 뒤 전국의 행정 구역을 개편하면서 광주(廣州)로 바뀌게 되었다. 983년(성종 2) 전국에 12목을 설치할 때에 광주목(廣州牧)으로 승격되었다. 1018년(현종 9)에 전국을 5도 양계로 나누었는데, 광주는 양광도의 중심지가 되었다. 양광도는 도내의 중심 지역인 양주(楊州)와 광주(廣州)의 첫글자를 따서 붙인 이름으로, 지금의 경기도 남부지역과 강원도 일부, 그리고 충청남도와 충청북도의 대부분 지역을 관할하였다.
[조선 시대]
조선 시대의 강남구 지역은 경기도 과천군의 상북면(上北面)과 동면(東面)의 일부, 그리고 광주(廣州)의 언주면(彦州面)과 대왕면(大旺面)의 대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강남구의 주된 구성 요소인 광주(廣州)는 조선 건국 직후에는 고려 말 행정구획인 양광도에 예속된 상태로 있었으나, 1395년(태조4) 양광도를 경기좌우도로 개편하여 광주목은 경기좌도에 예속되었다가, 1413년(태종13) 경기좌우도를 경기도로 통합하여 8도 체제를 확립한 이후 계속하여 경기도의 소관 상태를 유지하였다.
『1872년 지방지도』에 의하면 광주군의 언주면은 가장 북쪽에, 대왕면은 언주면의 바로 아래쪽에 위치하여 오늘날의 강남구와 거의 일치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호구총수』에 의하면 광주군 대왕면은 고산동·율현동·노상동·수서리·대둔리·송현리·은곡리·노하동·신곡·등자리·하산동·둔퇴리·일원·자양동·지곡동·세천동·오야곡·사촌리 등으로 구성되어 있고, 언주면은 신원·포전리·반곡동·양재리·방하교·역촌·논고개·압구정·청담·저자도·무동도·부노도 등의 동리를 거느리고 있는데, 오늘날의 강남구의 행정동이나 법정동의 명칭을 대부분 찾아볼 수 있다.
개화기 이후 오랜 전통의 행정구획도 크게 변화하게 되는데, 1895년(고종 32)에는 8도체제가 23부제로 개편되면서 광주는 한성부 소속의 광주군이 되었다가, 1896년(건왕 원년) 8월 이후 다시 경기도에 속하게 되었다.
[일제 강점기]
1914년 일제는 전국적인 행정구역의 개편을 단행하였는데, 이전의 317개 군(郡)이 220개로 대폭 감축되었으며, 면(面)도 4,332개에서 2,521개로 통합되었다. 그 결과 경기도에서도 16개 군이 없어지고 20개 군만이 남게 되었으며, 군 아래의 면과 부락도 대폭적인 재편이 이루어졌다. 이에 따라 현재의 강남구의 일부였던 과천군 상복면과 동면 지역은 시흥군 신동면으로 통합 개편되었으나, 광주군의 대왕면과 언주면은 큰 변동 없이 그대로 유지되었다.
[현대]
1963년 서울특별시의 행정구역 확대에 따라 서울의 면적은 268㎢에서 605㎢로 2배 이상으로 확대되었다. 이때 광주군 소속의 언주면(彦州面) 전역과 대왕면(大旺面) 중 5개 동리[일원, 수서, 시곡, 율현, 세곡]가 성동구에 편입되었는데 오늘날 그 대부분 지역이 강남구에 속해 있다. 1963년 말에는 확대된 지역을 관할하기 위하여 10개 출장소가 신설되었는데, 성동구에는 천호출장소, 언주출장소와 송파출장소가 설치되었다.
1973년에는 경부고속도로의 개통으로 강남 지역의 행정구역을 개편할 필요성이 절실해지자, 언주출장소 관내의 4개 동과 성동구의 잠실동, 송파출장소의 일원동 및 세곡동, 그리고 영등포구 소관인 신동출장소의 서초동, 양재동, 잠원동을 관할구역으로 하는 성동구 영동출장소가 신설되었다. 이로부터 2년 뒤에는 영동출장소가 폐지되고 강남구가 신설되어 비로소 강남구가 서울특별시의 행정구역으로 등장하게 된다. 당시 강남구는 영동출장소의 영역 이외에도 천호출장소의 관할구역까지 합한 대규모의 구로, 현재의 서초구·강남구·송파구·강동구 등 4개 구를 모두 합친 지역이었다. 면적만으로도 139.2㎢로 서울시 전체 면적의 23%에 달하였다.
강남 지역이 점차 도시화되고 인구의 과밀화 현상을 보이게 되자, 1979년 강동구가 신설되어 옛 천호출장소 지역과 강동 일대가 강동구로 분리되었다. 1988년에는 14개 동이 분리되어 서초구가 신설되었고, 1989년에는 도곡동이 다시 강남구 관할로 편입되어 현재 15개의 법정동과 26개의 행정동을 관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