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800346 |
---|---|
한자 | 奉恩寺木四天王像 |
분야 |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물/불상 |
지역 | 서울특별시 강남구 봉은사로 531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강호선 |
제작 시기/일시 | 1746년 |
---|---|
보수|복원 시기/일시 | 2001년 - 봉은사 목 사천왕상 보수 |
문화재 지정 일시 | 2002년 12월 26일 - 봉은사 목 사천왕상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160호로 지정 |
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봉은사 목 사천왕상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재지정 |
현 소장처 | 봉은사 진여문 - 서울특별시 강남구 봉은사로 531[삼성동 73] |
원소재재 | 봉은사 천왕문 - 서울특별시 강남구 봉은사로 531[삼성동 73] |
성격 | 사천왕상 |
재질 | 나무 |
크기(높이) | 동방지국천왕 211.2㎝|남방증장천왕 207㎝|서방광목천왕 207.4㎝|북방다문천왕 211.2㎝ |
소유자 | 봉은사 |
관리자 | 봉은사 |
문화재 지정 번호 |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
[정의]
서울특별시 강남구 삼성동 봉은사에 있는 조선 후기의 목조 사천왕상.
[개설]
불교의 우주관에 따라 세계의 중심인 수미산(須彌山) 중턱을 둘러싼 사방의 세계를 수호하는 신을 사천왕이라 한다. 동방의 지국천왕(持國天王), 서방의 광목천왕(廣目天王), 남방의 증장천왕(增長天王), 북방의 다문천왕(多聞天王)을 일컫는다. 이들 사천왕은 갑옷 입은 무장(武將)으로 표현되며 성격에 따라 각기 지물(持物)을 들고 있다. 때로는 발로 악귀를 밟고 있는 모습으로도 묘사된다. 봉은사의 사천왕상은 원래 1942년 건축된 천왕문에 있었다. 그런데 1998년 법왕루를 신축하면서 천왕문을 헐게 되어, 진여문에 공간을 마련해 봉안했다가 현재는 보우당(普雨堂)으로 옮겨 보관중이다.
2001년 색을 새로 칠하기 위해 상을 조사하던 중 동방 지국천왕을 제외한 나머지 세 구의 상에서 발원문과 후령통(喉鈴筒) 등 복장유물을 수습하였다. 복장유물의 기록에 의하면 이 상들은 1746년 화원(畵員) 여찬(呂燦), 신찰(愼察), 성현(性賢), 민휘(敏輝) 등에 의해 조성된 것이다. 여찬은 1708년 청양 장곡사 후불탱 조성에 참여했고, 민휘는 1728년 무주 안국사 괘불탱, 1734년 양산 통도사 영산전 영산회상도, 1776년 구례 천은사 신중탱 조성 등에 참여한 화사이다. 2002년 12월 26일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160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
[형태]
210㎝ 내외의 목조 사천왕상으로 목제대좌에 서 있다. 갑옷을 입고 있고, 투구를 쓴 서방광목천을 제외하고는 화려한 보관을 머리에 쓰고 있다. 비파, 칼, 용, 당을 들고 있다.
[특징]
18세기의 다른 사천왕상과 비교할 때 자세가 입상임에도 다른 상보다 크기가 작다는 것, 세부표현에 있어 어깨위로 흘러내리는 머리카락이 전혀 없고, 귀걸이도 착용하지 않았다는 점, 그리고 화염이 전혀 표현되지 않았다는 점, 생령좌가 아닌 단순한 방형의 목제좌대에 직립한 것 등이 특징이다.
[의의와 평가]
지금까지 제작연대가 알려진 임진왜란 이후 사천왕상 조각은 인조와 숙종 대의 상들 뿐이고, 영조와 정조 대에는 탱화로만 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봉은사 사천왕상으로 18세기 사천왕상 조각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복장유물은 조선 후기 사천왕상 신앙과 불복장 연구에 많은 도움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