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80038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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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廣州治西光秀山李氏世葬記碑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비 |
지역 | 서울특별시 강남구 광평로31길 20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나각순 |
[정의]
서울특별시 강남구에 위치한 조선 시대 광평대군 묘역을 중심으로 주변 분묘의 위치와 좌향(坐向) 및 합장 여부를 새긴 비(碑).
[개설]
옥개형 3면비에 새겨진 기록으로 정식명칭은 ‘광주치서광수산이씨세장기(廣州治西光秀山李氏世葬記)’이다. 비의 앞면에 ‘광주치서광수산이씨세장기’라고 써져 있고, 후면에는 ‘숭정기원후68년을해월일(崇禎紀元後六十入年乙亥月日)’이라고 쓰여 있어, 1695년(숙종 21)에 써졌음을 알 수 있다. 전주 이씨 광평대군과 그의 아들 영순군 및 광평대군이 계승한 무안 대군의 묘역 등 10여 세대 186기의 분묘 위치와 좌향을 밝히고 있다. 비문은 광평대군의 후손인 이유(李濡)가 짓고, 이담(李湛)이 썼다.
[건립 경위]
광평대군 이후 숙종 21년까지 10대의 자손들 무덤이 한군데 모여 자리 잡게 됨에 따라 그 위치를 거의 구별할 수 없게 되었다. 또 비갈(碑碣)이나 표지(表誌)가 있는 곳도 별로 없었다. 이에 세월이 흐를수록 찾지 못할 것이 염려되어 묘 186기를 적어 그의 향배와 보수(步數)[거리]를 기슭의 순서대로 구별하여 기록하게 되었다. 고총(古塚)도 빼지 않고 이성(異姓) 무덤도 같이 기록하였으며, 광평 대군파에 대하여는 특히 자세히 기록하였다. 아울러 돌에 새겨 산 아래에 세워 후손으로 하여금 각각 선영(先塋)을 알게 함으로써 조상을 추모하는 정성을 두텁게 하는 한편 집안의 세장(世葬)한 미풍을 알아서 종족간의 친목을 돋우는 기풍을 돈독히 하기 위해 기록하였다. 문장은 가선대부(嘉善大夫) 평안도 관찰사 겸 병마수군 절도사 순찰사(巡察使) 관향사(館餉使) 평양부윤(平壤府尹) 이유가 지었으며, 1695년에 비문으로 새겨 세웠다.
[위치]
비문의 위치는 수서동 전주 이씨 광평대군파 묘역 내 재실 뒤편, 도청 건물을 지나 우측의 묘역 내 길을 따라 가면 광평대군 묘역 아래쪽에 있다.
[형태]
지붕형 머리돌과 방형 대좌를 갖춘 비로, 옥개석의 크기는 95×62×30㎝, 비신은 56×145×27㎝, 비좌는 91×68×35㎝의 규모이다.
[금석문]
먼저 문장의 제목으로 ‘광주치서광수산이씨세장기’라 적고, 광수산이 헌릉의 북록에서 뻗어 나왔음을 밝히는 묘역의 위치와 형세를 기록하였고, 무안 대군과 광평대군의 묻힌 곳임을 먼저 밝히고 있다. 이어 광평 대군 묘를 중심으로 그 서쪽 첫 번째 기슭에 영순군 묘, 두 번째 기슭에 무안 대군 묘, 세 번째 기슭에 청안군 묘 등이 있으며, 광평대군 묘의 동쪽 산의 주봉 아래에 군수 경춘, 감찰 희안 등의 묘가 있고, 이어 첫 번째부터 아홉 번째 기슭에 산재된 묘들을 차례로 기록하였다. 이어 남산의 하단 두 기슭에 있는 묘소를 기록하였다.
[현황]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48호 전주 이씨 광평대군파 묘역에 속해 있어, 종중의 전체 묘역 관리와 더불어 잘 보전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가족묘에 대한 특유한 기록을 새긴 비로, 가족묘소로서 오래되고 광대한 면모를 보여주고 있어 전례가 거의 없는 학술적 가치가 높은 금석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