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30009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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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樓亭 |
영어공식명칭 | Nujeong Pavilion |
분야 | 생활·민속/생활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경상남도 거창군 |
시대 | 조선/조선 전기,조선/조선 후기,근대/개항기,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
집필자 | 박기용 |
[정의]
경상남도 거창군 지역에 있는 수양·교육·연회와 풍류·종교 행사·군사 목적·행정 집행을 위하여 조망이 좋은 곳에 건립한 다락집.
[개설]
누정의 역사는 오래 되었다. 누정 문화는 중국에서 시작했으나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독자적인 문화로 발전하였다. 중국에서는 은나라 말기에 이미 성곽에 누각을 건립하였다. 중국 춘추시대에 도루를, 한무제 때는 성루를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다. 우리나라는 삼국 시대 때 636년(무왕 37)에 백제 무왕이 신하들과 망해루[망해정]라는 누각에서 잔치를 열었다는 기록이 있고, 488년(소지왕 10)에 백제 소지왕이 천천정이라는 정자에 행차하였다는 기록이 나타난다. 우리나라 정자는 그 형태와 기능, 위치적인 면에서 중국의 누정과 달리 교육과 조상 추모와 교육의 장소라는 독자적인 문화를 형성하여 중국의 연회와 풍류 위주와 일본의 폐쇄적인 다도(茶道) 공간과는 차이가 있다. 거창에는 1438년 신기가 개화리에 등과루를 지었고, 1392년 유환이 위천에 영사정을 지었다.
누정에는 우리나라의 전통 사상이 담겨 있다. 유교, 도교, 풍수 사상이 그것이다. 첫째로 유교 사상에는 성리학의 원리에 따라 우주관을 반영하고 있다. 연못을 네모나게 파고 가운데 둥근 섬을 만드는 지방 도원(池方島圓) 형태는 천원지방(天圓地方)이라는 성리학의 우주관과 동일한 사상이다. 여기에는 하늘이 둥글고 땅은 네모나며, 그 사이에 인간이 있다는 천지인(天地人)이란 삼재(三才) 사상이 담겨 있다. 거창의 수승대[명승 제53호]는 구연 서원과 요수정 사이로 냇물이 흐르고 자연섬인 거북 바위가 둥글게 앉아 있어 천연의 지방 도원을 형성한 명승이다. 또 선비의 출처관(出處觀)에 따라 뜻을 펼칠 수 있으면 출사하고 그렇지 못하면 은거하여 자기 수양으로 뜻을 지키는 것이 좋다는 생각은 거창의 요수정 기문에 잘 나타나 있다. 아울러 가문의 뿌리에 해당하는 조상에게 보답한다는 성리학 원리도 나타난다. 조상을 추모하고 그 가르침을 후손에게 교육하는 정신문화는 유교의 성리학 사상을 구체적으로 실현하는 장소로서 누정이 자리매김하고 있음을 뜻한다. 둘째로 도교 사상에는 노자의 무위자연과 우리 고유의 신선 사상이 구현되어 있다. 노자 사상은 건축물의 무형적 상호조정 기능인 균형, 삶의 질을 높이는 평형, 생활에 맞게 공간을 구성하는 효율성을 뜻한다. 이때 관련 인물의 정려·재실·서원·사당·비석 등 부속 건물이나 시설이 경내에 함께 존재한다. 거창읍의 건계정이나 위천면의 관수루처럼 자연과 건물이 하나처럼 균형을 이루도록 누정의 하부 기둥을 자연 암반 위에 그랭이질을 하여 초석 없이 건축을 하는 균형, 계자난간을 두르고 네 모퉁이 처마에 활주를 받쳐서 안정성을 추구하는 평형, 남하면 입암정처럼 누정 옆에 다실을 만들어 차를 끓이는 효율성을 추구하고 있다. 그리고 정자 안에는 건물의 내력을 적은 기문, 생각과 느낌을 펼친 판상시, 시를 기둥마다 새겨놓은 주련으로 장식을 한다. 북상의 가선정처럼 정자의 단청과 그림 속에 정자 창건자의 자연 친화적인 생각과 신선·불로초 그림 속에 불로장생의 기원을 담기도 하고, 심신의 수양과 윤리적 실천으로 신선 사상을 추구하는 내용도 담고 있다. 셋째로 지리학의 풍수 사상은 삶의 안정과 가문의 부귀, 자손의 번창을 기원하는 생각의 발로이다. 건물은 지형에 맞게 짓되 대체로 배산임수의 형태를 취하며, 『주역』을 근거로 길상을 구하고 흉상을 피하려 하며, 산·물·방위·사람을 누정 건축의 구성 요소로 삼는다. 건축의 방위 역시 주산(主山)에서 내려오는 용(龍)의 맥을 따라 설정하며, 이것이 개인의 삶과 가문·후손의 번창을 이룰 수 있는 조건으로 본다. 그 밖에도 대들보를 용처럼 만들어 화재를 방비하려는 민간 사상도 나타나고, 기둥의 공포 위에 봉황을 조각하여 좋은 기운을 불러오고, 용의 새끼를 귀면처럼 그려서 나쁜 기운을 몰아내려는 생각도 표현하고 있다.
[현황]
거창의 뛰어난 누정은 거창읍의 침류정·건계정, 가조면의 모현정·원천정, 가북면 명동의 소원정, 남하면의 심소정, 신원면의 인풍정, 위천면의 관수루·요수정, 북상면의 용암정·병암정·가선정 등이 있다. 그중에서 관수루·요수정·용암정은 선비의 수양과 학문과 교육과 조상 추모를 실천하던 장소로서 경관이 가장 뛰어나며, 여름에는 시원한 숲과 계곡의 맑은 물 흐름에서, 겨울에는 눈 내린 설경에서 동(動)과 정(靜)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거창군 누정의 종류는 다양하다. 건축물의 유무에 따라 건물 누정과 자연 누정으로 나눌 수 있다. 건물 누정은 기와지붕인 와정(瓦亭)과 초가지붕인 모정(茅亭)이 있고, 자연 누정은 먼 곳을 관망할 수 있는 누대(樓臺), 마을 입구의 나무 그늘인 수음정(樹陰亭), 큰 바위 그늘인 석정(石亭) 등이 있다. 주요 건축물의 위치에 따라서는 관아 누정[침류정], 향교 누정[춘풍루], 서원 누정[구연 서원의 관수루] 등이 존재한다. 자연환경에 따라서는 계곡·냇가 누정[모현정], 강가 누정[사락정], 절벽 누정[요수정], 산속의 별서[용암정]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관아 누정은 민정을 살피거나 지방 행정, 연회를 베푸는 기능으로 활용하였다. 향교·서원·마을 누정은 교육·휴식·선현 추모 활동이 주목적이다.
각 읍면별 주요 건물 누정은 다음과 같다. 거창읍의 춘풍루, 앙진루, 건계정, 대앙정, 덕산정, 동인정, 망월정, 조양정, 침류정, 호산정 등이 있고, 가북면에는 고운정, 관운정, 소원정, 정각정, 침우정 등이 있다. 가조면에는 광계정, 만학정, 모현정, 문수정, 양모정, 온계정, 원천정, 육우정, 일신정, 취수정, 화수정 등이 있다. 고제면에는 영모정, 옥계정, 용원정 등이 있다. 남상면에는 근수정, 이요정, 이이정, 일원정이 있다. 남하면에는 소심루, 도천정, 사모정, 산학정, 생화정, 심소정, 심원정, 이요정, 입암정, 화수정 등이 있다. 웅양면에는 자전루, 산수정, 화수정 등이 있다. 마리면에는 구암정, 동매정, 사락정, 염수정, 용원정 등이 있다. 북상면에는 화엽루, 가선정, 농은정, 도계정, 모암정, 반학정, 백모정, 병암정, 용암정, 월성정, 청사정, 행단정 등이 있다. 신원면에는 구은정, 덕강정, 덕인정, 두복정, 사우정, 삼의정, 쌍수정, 소진정, 심계정, 영사정, 율계정, 율산정, 율천정, 인풍정, 임청정, 하남정 등이 있다. 위천면에는 관수루, 능허정, 약암정, 영사정, 요수정 등이 있고, 주상면에는 오우정, 춘당정, 회남정 등이 있다. 거창군의 누정 현황은 영남에서도 많은 편이다. 누각은 향교의 춘풍루[1716년], 구연 서원의 관수루[1740년], 웅양의 자전루[1777년], 북상 모리재의 화엽루[1807년], 거창읍의 앙진루[1917년], 남하 심소정의 소심루[1965년] 등 여섯 곳이 있다. 정자는 건축물로 된 정자 90개소를 비롯하여 자연의 나무나 돌로 된 정자가 24개소가 있어 모두 114개소이고, 거창군 내의 누정은 모두 120개소이다. 그러나 이 중에는 현재 철거되었거나 퇴락되어 정자로서 기능을 하지 못하는 4~5개소가 있다. 행정 구역별로는 12개소가 있는 북상면이 가장 많다.
[의의와 평가]
거창 지역에 누정이 많이 있는 이유는 첫째로 산수의 경관이 아름답기 때문이다. 둘째는 자기의 심신을 수양하고 풍류를 즐기는 문화가 발달하였으며, 셋째는 조상을 추모하려는 유학 사상이 강하기 때문이다. 넷째는 후손을 가르치려는 교육적 열정이 많기 때문이다. 거창의 누정은 조선 시대 양반과 서민의 생활상을 보여 주는 자료라는 점에 의의가 있고, 유형의 건축 문화재로서 자연과 인간이 어떻게 조화롭게 공존하려 했는가를 보여 주는 귀중한 문화재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