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300117
한자 有形 遺産
영어공식명칭 Tangible Cultural Property
이칭/별칭 문화유산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경상남도 거창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구본용

[정의]

경상남도 거창군 지역에서 역사적·예술적으로 보존할 가치가 있는 일정한 형태를 지닌 유형의 문화재.

[개설]

거창은 경상남도 북서부 내륙 산간 지방의 분지형 지역으로, 동쪽은 합천군, 서쪽은 함양군, 남쪽은 산청군, 북쪽은 경상북도 김천시와 전라북도 무주군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 소백산맥을 경계로 하여 경상북도와 전라북도에 접경하고 있고, 진안 고원에서 이어진 산간 분지이다. 사방으로 1,000m 이상의 높은 산으로 에워싸여 있고, 그 사이로 흐르는 남덕유산에서 발원한 영천(瀯川)삼봉산에서 발원한 아월천(阿月川)이 합류하여 낙동강의 지류인 황강(黃江)의 원천이 된다. 이런 자연 환경은 일찍이 사람들이 터를 잡고 살기에 적합하였다. 거창 분지와 가조 분지의 넓은 들판은 고대부터 삶의 터전으로 자리 잡아 정치체 태동에 유리한 자연 환경을 만들어 많은 유형의 문화유산을 남겼다. 정장리 구석기 유적을 비롯하여 곳곳의 선사 유적지, 고분과 산성으로 대변되는 삼국 시대 문화재, 중세 불교 유산과 조선 시대 수많은 누정(樓亭)과 서원(書院) 문화의 발달은 거창 문화유산의 현주소이다. 거창군은 2016년 7월 현재 지정 문화재 88점[국가 지정 13점, 등록 문화재 3점, 도 지정 문화재 73점]과 비지정 문화유산 1,000여 점을 보유하고 있다.

[선사 시대 유산]

거창의 선사 시대 문화는 거창읍 정장리 구릉지 일대에서 구석기 문화부터 시작되었다. 정장리 구릉지 일대의 문화층은 4만여 년 전 후기 구석기 유적으로 한반도 최고 수준의 슴베찌르개와 다양한 형태의 뗀석기가 다량으로 출토되었다. 조금 떨어진 남상면 임불리에서는 한반도에서 드물게 발견되는 중석기(中石器) 시대 잔석기 유물과 신석기 시대 최고 수준의 가는 덧무늬 토기[세선 융기문 토기], 빗살무늬 토기가 출토되어 당시 문화의 우수성을 반영하고 있다.

청동기 시대는 농경의 발달로 정치 세력이 등장하고 곳곳에 고인돌[지석묘(支石墓)]로 대표되는 청동기 문화유산을 꽃피웠다. 분포 지역을 보면 황강 상류의 남하면, 남상면가조천 주변에 집중되어 있다. 대표적 유적으로는 남하면 대야리 고인돌, 산포 고인돌, 무릉리 고인돌 떼, 월곡 고인돌 떼, 지산리 고인돌 떼가조면 일대에 고인돌 150여 기가 남아 있다. 주로 강변과 충적 대지와 작은 구릉에 분포하는 입지 특성이 있다. 특히 주상면 거창 내오리 지석묘[경상남도 기념물 제65호]는 소위 완전한 북방식인 탁자식 형태로 청동기 문화 전개에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고 있다.

[삼국 시대 유산]

삼국 시대는 고분(古墳)과 산성(山城) 유적이 대표적인 문화유산이다. 현재 거창군에는 거창읍 개봉 고분무릉리 고분군을 비롯한 30여 개의 삼국 시대 고분 유적이 남아 있다. 이 중에서 마리면 말흘리 고분남하면 무릉리 고분 일부가 발굴 조사되었으며 대체로 지역성을 갖춘 대가야의 영향을 받은 5~6세기 지배자 무덤으로 밝혀졌다. 또한 거창은 산성의 고장이라 불릴 만큼 많은 산성 흔적을 간직하고 있다. 거열성(居烈城)[경상남도 기념물 제22호], 분산성(盆山城), 하성(霞城)[경상남도 문화재 자료 제92호]으로 대표되는 산성 20여 개가 당시 신라, 백제 사이 접경지의 중요성을 말해 주고 있다. 이러한 산성은 대부분 삼국 시대 때 축성되었으며 고려, 조선 시대에는 임진왜란, 병자호란, 동학 혁명 때 개축되고 보수되어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거창 지역 산성은 대부분 산의 정상부를 감싸고 있는 테뫼식 산성으로 산의 정상부를 배경으로 높은 곳에 축성된 특징을 보인다.

[불교 유산]

거창은 삼국 시대부터 신라 문화권으로 들어가면서 많은 불교 유산을 남겼다. 현존하는 고견사, 연수사, 송계사와 지금은 없어지고 흔적만 남은 송림사, 가섭사, 아림사, 감악사, 건흥사 등은 모두 신라 때 세워진 사찰이다. 『거창군지(居昌郡誌)』에 기록된 관내의 불교 유산은 약 80여 건에 이르며, 주로 절터와 관련된 지명과 축대, 와편, 탑의 부재 등이다.

석탑은 천덕사지 삼층 석탑, 갈계리 삼층 석탑, 가섭사지 삼층 석탑, 아림사지 오층 석탑, 탑선동 폐탑 등이 남아 있다. 모두 고려 시대 석탑이다. 불상으로는 금동 보살 입상, 거창 농산리 석조 여래 입상, 거창 양평리 석조 여래 입상, 거창 상림리 석조 보살 입상, 가섭암지 마애 여래 삼존 입상, 고견사 석불 등이 있다. 거창읍에서 출토된 간송 미술관 소장 금동 보살 입상[보물 제285호]은 신체 각부의 묘사에서 백제 양식이 강하게 나타나는 특징이 있다. 거창 농산리 석조 여래 입상[보물 제1436호]은 온 몸에 양감이 뚜렷하고 당당하면서도 균형잡힌 신체와 형식화되지 않은 법의의 옷 주름 등에서 통일 신라 후기 조각 양식이 반영된 거창의 대표적 불상이다. 거창 양평리 석조 여래 입상[보물 제377호]은 머리 부분에 비해 신체는 그다지 풍만하지 않으나, 늘씬한 체격으로 훌륭한 비례를 지니고 있어 신라 하대 9세기경에 제작된 거불(巨佛) 조각들과 함께 신라의 불상 양식을 보여 주는 주요한 작품으로 여겨진다. 거창 상림리 석조 보살 입상[보물 제378호]은 전체적으로 경화된 각 부의 표현이나 침체된 안면 표정, 도식화된 옷 주름 등에서 고려 시대 제작임을 알 수 있고, 보살이 지니고 있는 연봉과 정병으로 미루어 고려 시대에 널리 믿었던 관음보살로 추정할 수 있다. 거창 가섭암지 마애 삼존 여래 입상[보물 제530호]은 독특한 형식의 마애불로 고려 시대의 대표적 불상이다.

이 밖에 고려 시대 고견사 석불[경상남도 유형 문화재 제263호]이 남아 있고, 조선 시대 불상은 청동기 선돌에 새겨진 거창 농산리 입석 음각 선인상[경상남도 유형 문화재 제324호]과 심우사 법당에 있는 거창 심우사 목조 아미타여래 좌상[보물 제1690호]이 당시의 불교문화를 대변하고 있다.

거창 지역에 남아 있는 부도로는 8각 원당형 고려 시대 거창 감악사지 부도[경상남도 유형 문화재 제323호]과 조선 시대 송계암 부도 2기가 유일하게 남아 있다. 거창의 불교문화는 삼국 통일 후 비약적으로 발달하였고 특히 고려 태조의 스승인 희랑 대사거창군 주상면 출신으로 해인사를 크게 중창하여, 거창은 해인사와 가까이 있어 많은 영향을 받아 어느 지역보다 불교문화가 융성하였다.

[특징]

거창은 내륙 깊숙한 산간 분지이나 덕유산에서 발원한 큰 하천이 흐르고 한들, 월평, 가조 들판을 기반으로 경제적으로 넉넉하여 일찍부터 토착 세력이 형성되었다. 토착 세거지(世居地)를 기반으로 하는 집성촌이 곳곳에 형성되어 많은 유형 유산을 남겼다. 집성촌이 발달하여 세거지 중심으로 재실, 서원 등의 고건축물과 후손들이 선조의 덕을 추모하기 위하여 전기(傳記)와 문집(文集) 편찬 등으로 고문서(古文書) 자료가 풍부하며 마을의 씨족마다 효자 열녀의 정려(旌閭), 비각이 많이 남아 있는 고장이다. 또한 정자(亭子) 문화와 재실(齋室)로 대변되는 선비 문화유산이 발달한 곳이다. 어느 고장보다 계곡이 발달하였고 풍광이 수려하여 자연과 조화를 이루고 있는 누정(樓亭) 100여 개가 남아 있는 점이 이를 잘 대변하고 있다. 거창 풍속은 강건하고 소박하며 세칭 ‘울고 와서 울고 가는 고장’으로 태산 교악(泰山喬嶽)이라 불리는 경상도 기질을 간직하고 있는 한편 폐쇄적이고 전통적인 특징들이 곳곳의 문화유산에 흔적을 남기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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