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30049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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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瞻慕堂先生文集 |
영어공식명칭 | Cheommodang Seonsaeng Munjip |
이칭/별칭 | 첨모당집(瞻慕堂集)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문헌/전적 |
지역 | 경상남도 거창군 |
시대 | 조선/조선 전기,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박태성 |
저술 시기/일시 | 1517년~1602년 - 『첨모당선생문집』 임운이 저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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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행 시기/일시 | 1669년경 - 『첨모당선생문집』 간행 추정 |
문화재 지정 일시 | 1979년 - 『첨모당선생문집』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68호에 지정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989년 - 『첨모당선생문집』, 한국 문집 총간 제36집으로 영인본 발간 |
소장처 | 임씨 고가 장서각 - 경상남도 거창군 북상면 갈계리 1166 |
성격 | 문집 |
저자 | 임운(林芸) |
권책 | 3권 1책 |
규격 | 21×31㎝ |
문화재 지정 번호 |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
[정의]
경상남도 거창군 북상면 갈계리 출신 유학자 임운의 시문집.
[저자]
임운(林芸)[1517~1602]의 자(字)는 언성(彦成), 호(號)는 첨모당(瞻慕堂), 본관은 은진(恩津)이다. 아버지는 임득번(林得蕃)으로 경상북도 안동에 거주했다. 임운은 사서와 『근사록(近思錄)』, 『심경(心經)』, 『역경(易經)』 등을 공부하였는데 특히 『역경』에 능하였다. 또한 천문, 지리, 율려(律呂), 의약, 복자, 산수(算數), 병서(兵書) 등에 두루 밝았다. 임운의 스승으로는 부친이 있었고 남명 조식(曺植)과 퇴계 이황에게서도 학문을 배웠다. 효성이 뛰어나 조정에까지 알려졌고, 1567년(명종 22) 추천으로 사직서 참봉(社稷署 參奉), 1569년(선조 2) 집경전 참봉(集慶殿參奉), 이듬해 후릉 참봉(厚陵參奉)에서 경기전 참봉(慶基殿參奉)이 되고 1572년 연은전 참봉(延恩殿參奉)을 지냈다. 만년에 이황의 문하에서 평소의 철학적 관심사를 질문하고 토론하였다. 형인 갈천 임훈(林薰)과 함께 효자로서 여문(閭門)이 세워지고 경상남도 안의면의 용문 서원(龍門書院)에 봉향되었다.
[편찬/간행 경위]
후손 및 용문 서원의 원유들이 가장 초고를 바탕으로 수집, 편차하여 1669년경 간행했다. 1989년 민족 문화 추진회에서 한국 문집 총간 제36집 『첨모당집(瞻慕堂集)』으로 영인하였다. 경상남도 거창군 북상면 갈계리의 임씨 고가 장서각에 소장되어 있다.
[형태/서지]
『첨모당선생문집』은 목판본으로 3권 1책으로 크기는 21×31㎝이다.
[구성/내용]
『첨모당선생문집』의 권1은 시·부, 권2는 「유천마록(遊天磨錄)」·「책문(策文)」·논, 권3은 행장과 갈명이다. 1권의 「감로사(甘露寺)」, 「등차일암(登遮日巖)」 등 대부분의 시는 서경이나 서정을 노래했다. 2권의 「유천마록」은 기행문으로 널려 알려진 뛰어난 문장이다. 「책문」은 천지 인물(天地人物)의 발생 이치 및 원리, 하늘의 둘레, 달과 태양의 좌우 회전 방향 및 시일, 일식·월식, 조석(潮汐)의 이론 등 천하 지리(天下之理)를 논한 것이다. 상소문에서는 여론을 존중하고 사리에 맞는 왕도 정치를 강조하였다. 또한 사대, 교린, 적서, 도승에 대한 상소문에서 중국에 대한 사대와, 일본·야인(野人) 등과 일률적인 엄단을 할 것이 아니라 교린을 잘 해야 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적서(嫡庶)」에서는 적서의 분별이 예로부터 있어 온 제도이므로 이를 엄격히 시행하여 상하 귀천(上下貴賤)의 문란을 막아 신분 질서를 유지해야 한다는 당시 지배층의 일반적인 상하 신분 질서관을 표명하고 있다. 또한 「도승(度僧)」에서는 승과(僧科)를 폐지해 억불 숭유 정책을 유지하며 명종 때 승과가 복설되어 중도 벼슬에 등용되고 선비와 동등하게 되는 것은 풍속을 해치는 것이라고 반대하였다. 「석면반상복론(釋冕反喪服論)」은 예와 정치를 논한 것으로서, 왕이 상중에는 면류관을 쓰지 않는 것이 원칙이나 전세(前世)를 계승하고 대통을 바르게 하는 것은 천하의 큰일이기 때문에 흉복으로써 정치에 임할 수 없다고 주장하고, 따라서 정치를 함에는 길복(吉服)을 입고 임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즉 형식적인 예에만 집착하면 사직(社稷)이 위태롭게 된다는 현실적인 이론을 내세우고 있다. 「강목 불계 춘추론(綱目不繼春秋論)」에서는 주자의 강목이 공자의 춘추 문법을 이어받지 않은 이유를 논술하여, 역사에 있어서 어떻게 기록을 남겨야 하는지를 말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첨모당선생문집』에는 시와 문장 등 다양한 글이 실려 있으며, 특히 유학을 장려하고 불교를 배척하는 글은 조선 시대의 사상적 경향을 잘 전하고 있다. 또한 지역 사회에 관한 글들이 다수 실려 있어, 거창 지역의 역사를 연구하는 데 도움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