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3007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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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渭川 3·1 運動 記念碑 |
영어공식명칭 | Stone Monument for the March 1st Independence Movement in Wicheon |
이칭/별칭 | 위천 3·1 독립 운동 기념비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비 |
지역 | 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 원학길 324[장기리 511-4]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정시균 |
건립 시기/일시 | 1985년 - 위천 3·1 운동 기념비 세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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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09년 - 위천 3·1 운동 기념비 재건 |
현 소재지 | 위천 3·1 독립운동 기념비 - 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 장기리 511-4 |
성격 | 비|기념비 |
관련 인물 | 정대필|희탁|이형준|유한탁 |
재질 | 화강암 |
관리자 | 위천면 |
[정의]
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 장기리에 있는 3·1 만세 운동을 기념하여 세운 비.
[개설]
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에서 일어난 3·1 독립 만세 운동을 기념하는 기념비이다. 위천면에서 1919년 4월 8일 위천 장날을 택하여 유희탁, 정대필이 주동이 되고 유한탁과 이형준 등이 합세하여 만세 운동을 전개하였다. 이에 장꾼들도 합세하여 독립 만세를 외치니 그 기세가 하늘에 닿았다. 그 여세를 몰아 일본 헌병 분견소를 습격하고 가두시위를 계속하니 일본 헌병은 총검으로 맞서 무수한 양민을 구타하고 체포하였다. 군중들이 해산되고 주동자를 색출할 때 "내가 주동자다."라고 호통치며 앞장선 사람이 유희탁과 정대필이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죄가 없으니 방면하라고 소리쳤다. 체포되어 가는 중에도 독립 만세를 연호하였으며 갖은 고문에도 굴하지 않았다. 진주 형무소에서 3년의 옥고를 치렀다. 정부 수립 후 유희탁은 대통령 표창을 받았고 정대필은 1977년 12월 13일에 독립 유공자의 표창이 추서되었다. 유희탁은 1987년에 성균관장의 표창과 1992년 3월 1일 독립 유공자 표창을 받았다. 유희탁과 정대필 등을 기리는 3·1 운동 기념비를 위천면사무소 건너편에 1985년에 세웠으나 작고 초라하여 2009년도에 같은 자리에 다시 세웠다.
[건립 경위]
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에서 일어난 3·1 운동 애국 투사들을 기억하고 우리의 애국정신이 살아 있음을 기리기 위하여 위천면사무소 건너편에 부지를 확보하여 건립하였다. 1985년에 이승관 거창 군수가 세운 비가 있었으나, 장소가 협소하고 기념비가 작고 초라하여 새로 건립할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2009년도에 김영일 광복회장의 비문을 받아 현재와 같이 같은 자리에 3·1 독립운동 기념비를 세웠다.
[위치]
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 장기리 511-4번지 위천면사무소 앞에 있다.
[형태]
위천 3·1 운동 기념비는 화강암으로 만든 기념비이다.
[금석문]
나라를 빼앗긴 지 십 년 일제의 탄압에 억눌리고 굶주렸던 겨레는 일천구백십구 년 삼 월 일 일 파고다 공원의 독립 만세를 계기로 삼천리 강토에 민족 독립의 봉화를 높이 올렸다. 이곳 위천면 고현에는 이해 삼 월 팔 일 장날을 기하여 정대필, 유희탁, 이형준, 유한탁 등이 앞장서 대한 독립 만세를 소리쳐 부르니 장꾼 모두가 노도와 같이 합세하여 장터는 삽시간에 만세의 함성으로 진동했으며 군중은 여세를 몰아 인근 일본 헌병 분견소를 덮치게 되었다. 그러나 무장 왜경의 무참한 총칼 앞에 많은 사람들이 끌려가 모진 매질과 혹독한 옥고를 겪으며 무자비하게 희생되었다. 이제 조국은 임들의 고귀한 희생으로 광복을 되찾은 지 어언 사십여 년 선진 조국 창조를 위한 힘찬 고동이 내일을 밝히고 있다. 우리는 임들의 숭고한 나라 사랑 겨레 사랑의 높은 얼을 받들어 길이 그 뜻을 후세에 전하고자 그 옛날 만세의 절규가 새로운 이곳에 작은 돌을 세운다.
서기 일천구백팔십오 년 월 일 거창 군수 세움. [이승관 거창 군수]
배달 후예(倍達後裔) 살아 오는 반만 년 근역(槿域)에 애국자 나지 않은 곳 어디 있으랴! 부강한 나라보다 애국자 많은 나라가 가장 좋은 나라라 하지 않던가. 자주 독립과 인류 공존 공생 외치던 기미년 대한 독립 만세 소식 이곳 거창군 위천면에 전해지자 애국이라면 뒤서지 않은 이 지역 선각자들 횃불 들고 일어서다. 정대필(鄭大弼), 유희탁(劉熺倬), 이형준(李衡峻), 유한탁(劉漢倬)이 그들이라. 4월 8일 정오 위천 장날 장꾼들 사이 오가며 태극기 흔들며 대한 독립 만세 목청껏 외쳐대니 삽시간에 군중들 사방에서 연호하는 대한 독립 만세! 대한 독립 만세! 헌병 주재소로 몰려가 "우리는 독립국이니 일인들은 물러가라." 한목소리로 외쳐대니 무자비한 일본 헌병 총검 휘두르며 짓밟고 주동자를 포박하여 모진 고문 형벌로 독립 의기를 꺾으려 하였더라. 오늘 되찾은 내 나라 내 땅에서 지난날 선열들 불굴의 민족혼 기리며 이곳에 3.1 독립운동 기념비 세우고 자라나는 후세들에게 이르노라. 역사 잊어버린 민족에겐 미래가 없느니. 위대한 선열들의 자랑스러운 후손으로서 3.1 독립 정신 자손만대 유전코자 이 비문을 짓다.
2009년 3월 6일 광복회장(光復會長) 김영일(金永逸) 지음
[현황]
위천 3·1 운동 기념비는 원래 1985년에 이승관 거창 군수가 세웠고 비문도 지었다. 그 자리에 터를 넓게 잡아서 새로 비를 세웠다. 현재 기념비의 명칭은 ‘3·1 독립운동 기념비’이며, 먼저 세운 비는 사라지고 없다. 금석문은 당시에 지은 것을 옮겨 적은 것이다. 지금도 위천면에서는 3·1 문화제가 열리고 있다. 3·1 문화제 때 지역민들이 추모제를 하고 있다. 비는 위천면사무소에서 관리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위천 3·1 운동 기념비는 산간 오지인 이곳에도 결코 외세에 굴하지 않는 자주 독립의 정신은 면면히 흘러옴을 후손들에게 알려 주고 지역민들에게는 자긍심을 심어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