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3009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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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尹哲洙 |
이칭/별칭 | 순명(舜明),해관(海觀) |
분야 | 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남도 거창군 남하면 양항리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배병욱 |
출생 시기/일시 | 1868년 - 윤철수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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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19년 - 윤철수 파리 장서 서명 |
관련 사건 시기/일시 | 1919년 - 윤철수 파리 장서 운동 전개 |
몰년 시기/일시 | 1942년 |
추모 시기/일시 | 1977년 - 파리 장서비 건립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95년 - 윤철수 건국 포장 추서 |
출생지 | 윤철수 출생지 - 경상남도 거창군 남하면 양항리 574 |
거주|이주지 | 윤철수 거주지 - 경상남도 거창군 남하면 양항리 574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자 |
대표 경력 | 파리 장서 서명자 |
[정의]
일제 강점기 거창군 남하면 출신의 독립운동가.
[가계]
윤철수(尹哲洙)[1868~1942]의 본관은 파평(坡平)이며, 자는 순명(舜明), 호는 해관(海觀)이다.
[활동 사항]
윤철수는 한말과 일제 강점기 초에 활동하였던 거창 지역 유생으로, 곽종석(郭鍾錫)에게서 배웠다. 이로 인해 1919년 곽종석이 쓴 독립 청원서[파리 장서]에 거창 지역 유림의 한 사람으로 서명하였다. 영호남 유림을 아울러 전국의 유림 대표 137인의 서명을 받은 이 청원서를 파리 평화 회의에 제출하기 위해 김창숙(金昌淑)이 상하이로 파견되었다. 그러나 김창숙은 직접 파리로 가는 대신 신한청년당(新韓靑年黨)의 대표로 파리에 파견된 김규식(金奎植)에게 송달하여 제출케 하였다. 이른바 ‘파리 장서 운동’이다. 이로 인해 청원서에 서명한 유생들이 대거 검거되어 일제로부터 고초를 겪었고, 윤철수 역시 피해를 입었다. 윤철수는 1942년에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파리 장서 운동에 참여한 공훈이 인정되어 1996년 윤철수에게 건국 포장이 수여되었다. 파리 장서의 발상지인 거창에서는 1977년 거창읍 상림리 옛 침류정 자리에 ‘파리 장서비’를 세워 그 뜻을 기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