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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전리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3200193
한자 龍田里
영어음역 Yongjeon-ri
이칭/별칭 용밭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경상북도 김천시 남면 용전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송기동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1914년연표보기
변천 1949년연표보기
변천 1988년연표보기
변천 1995년연표보기
성격 법정리
면적 3.53㎢
가구수 5가구
인구(남, 여) 9명[남 6명, 여 3명]

[정의]

경상북도 김천시 남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마을을 개척할 당시 마을 뒷산에 있는 밭에서 용이 솟았다 하여 용전(龍田) 또는 용밭이라 하였다. 그 용이 거슬러 올라갔다는 운남리 종상(從上), 구름을 타고 승천했다는 운남산(雲南山) 등 인근에서 용전과 관련된 지명들을 확인할 수 있다.

[형성 및 변천]

조선 말 개령군 적현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으로 용전·우래(友來)가 통합되어 김천군 남면 용전동으로 개편되었다. 1949년 금릉군 남면 용전동으로 개칭되었고, 1971년 용전1동·용전2동으로 분동되었다. 1988년 동(洞)을 리로 바꾸어 용전리가 되었고, 1995년 김천시 남면 용전리가 되었다.

[자연 환경]

마을 한가운데 큰 저수지가 있고 드넓은 몽상계들이 펼쳐져 있다.

[현황]

용전리남면 소재지에서 북쪽으로 약 3㎞ 떨어져 있다. 2010년 11월 30일 현재 면적은 3.53㎢이며, 5가구 총 9명[남 6명, 여 3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동쪽으로 봉천리·운남리, 서쪽으로 신촌리, 남쪽으로 옥산리, 북쪽으로 초곡리와 이웃하고 있으며, 용전1리·용전2리 두 개 행정리로 이루어졌다. 밀양 박씨 집성촌이었으나 2007년 혁신 도시 조성 공사가 시작되면서 대부분의 주민이 타지로 이주해 지금은 9명이 거주하는 작은 마을이 되었다.

문화 유적으로는 박상남 처 팔거 도씨 정려각이 있다. 용전에 살던 팔거 도씨(八莒都氏)는 남편이 호랑이에게 물려 가자 밤을 새워 호랑이와 싸워 남편을 구한 열부로 나라에서 정려가 내리고 남편은 현령에 제수되었다.

자연 마을로는 용전, 우래가 있다. 용전은 밀양 박씨 복야공파(僕射公派) 집성촌으로 56세손인 박재희(朴再熙)의 3남 박문영(朴文寧)이 정조 때 이웃 봉천리에서 이주한 이래 대대로 세거해 오고 있다. 또 다른 기록에 따르면, 밀양 박씨 박계우(朴季愚)가 1453년(단종 1) 계유정난 후 수양대군파의 주청에 의해 처형되고 가족이 흩어졌다가 1460년(세조 6) 그 후손인 박수언(朴壽彦)이 영동에서 이주해 와 용전리의 입향조가 되었다고 한다.

우래는 불당골산 아래 우래못 가까이 자리 잡은 작은 마을로 동래 정씨 몽성공파가 주로 살았다. 옛날 부상역에서 개령면 양천역으로 공물을 수송하던 도로변에 있어 많은 사람들이 내왕하여 ‘벗[友]이 오고가는[來] 마을’이라 하여 붙인 이름이다. 일설에는 용전에서 나온 용이 운남리 종상으로 거슬러 올라갔다가 운남산에서 구름을 타고 승천할 때 우래에서 천둥소리가 났으므로 우레라 하였는데 이를 굳이 한자로 적으면서 우래(友來)가 되었다고도 한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1.07.18 2011년 한자 최종 검토 작업 용전은 밀양 박씨 복사공파(僕射公派) 집성촌으로 ->용전은 밀양 박씨 복야공파(僕射公派) 집성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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