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20019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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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德村里 |
영어음역 | Deokchon-ri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경상북도 김천시 개령면 덕촌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송기동 |
[정의]
경상북도 김천시 개령면에 속하는 법정리.
[형성 및 변천]
조선 말 개령군 서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덕림(德林)·산당(山堂)·자방(紫房)이 통합되어 김천군 개령면 덕촌동(德村洞)으로 개편되었다. 1949년 금릉군 개령면 덕촌동으로 개칭하였고, 1971년 덕촌1동·덕촌2동으로 분동되었다. 1988년 동(洞)을 리로 바꾸어 덕촌리가 되었으며, 1995년 김천시 개령면 덕촌리가 되었다.
[현황]
덕촌리는 개령면 서쪽 끝에 자리 잡은 마을로 개령면 소재지에서 서쪽으로 약 4㎞ 떨어져 있다. 2010년 11월 30일 기준 면적은 3.9㎢이며, 2015년 12월 31일 현재 인구는 총 118세대에 267명(남자 135명, 여자 132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동쪽으로 감문산을 사이에 두고 동부리, 서쪽으로 어모면, 남쪽으로 신룡리, 북쪽으로 남전리와 이웃하고 있다. 덕촌1리·덕촌2리·덕촌3리 세 개 행정리로 이루어졌으며, 금성 나씨·함양 오씨·흥양 이씨 집성촌이다. 지방도 913호선이 서쪽에서 남북 방향으로 지난다. 나비들, 앞들, 대징이들을 비롯한 넓은 평야가 많아 곡창지로 유명하다.
유적으로는 성산 이씨 효열각이 있다. 성산 이씨는 병자호란 때의 의병장으로 큰 공을 세우고 전사한 이언의 장군의 딸로 덕촌리에 사는 오여권(吳汝權)에게 출가하여 지극한 효성으로 시부모를 섬기었고 남편이 병사하자 삼종지의(三從之義)를 좇아 자결하여 효부요 열녀로 기록되었다. 뒤에 암행어사가 장계를 올려 1737년(영조 13) 나라에서 정려를 내려 어모면 다남리 오청계에 정문이 세워졌고, 1840년(헌종 6) 자방으로 옮겼다.
자연 마을로는 독송(獨松), 자방, 산당, 터골 등이 있다. 덕촌1리에 속한 독송은 뒷산에 큰 소나무가 홀로 서 있어 붙인 이름으로 세월이 흐르면서 음이 변하여 독술로도 불린다. ‘물수리 악(卾)’자를 써서 악송(卾松)이라고도 한다. 신룡리 오룡골 맞은편에 있으며 약 100년 전 흥양 이씨(興陽李氏) 이인목(李寅穆)이 옮겨 와 살면서 마을을 개척한 이래 후손들이 대대로 집성촌을 형성하였다. 옛날 마을 앞 어모천 변에 작은 마을이 있었는데 도적이 자주 출몰하는 바람에 폐동이 되었다. 지금도 대적들, 대징이들이라 불린다고 한다.
터골은 취적봉 아래에 있는 마을로 임진왜란 전후로 함안 조씨(咸安趙氏) 일가가 터를 잡고 정착하면서 터골이라 이름 짓고 한자로 기동(基洞) 또는 대동(垈洞)이라 하였다. 이후 대대로 함안 조씨 집성촌을 이루며 살았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지금은 금성 나씨, 밀양 박씨, 단양 우씨 등 다양한 성씨가 거주하고 있다. 마을 입구에는 일제 강점기까지 개령면 일대 최대 부호였던 우상학의 선행을 기리는 ‘우상학 송덕비’가 서 있다.
자방은 1480년경(성종 11) 함양 오씨 오식(吳植)이 경상남도 함양군에서 옮겨 와 정착했을 당시에 마을에 실을 짜고 물을 들이는 일을 하는 공방이 있었다 하여 붙인 이름이다. 산당은 자방에서 산당고개 너머에 있는 마을로 옛날 산신당(山神堂) 있었으므로 붙인 이름으로 여겨진다.